讀: 축적

#독서 - 다시, 읽기로 했다

매번 꺾이는 마음 2023. 3. 9.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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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가득 쌓인 현장, 실천이 뒤따르기를 기도하는 글쓴이가 사진 속에 비치지 않는다.

유년시절의 많은 시간은 책읽기.. 가 아닌 게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게임을 제외한 시간의 대부분이 책읽기에 쓰였다. 그 안에 빠져 현실을 잊으려 했었는지 모르나 단순히 생각하자면 책 속의 세상만큼 넓고 재미있는 것은 없었다.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이광수의 '흙'을 빌리던 지적 허영심(다 읽었으면 탐구심이라고 썼을 것 같다)이 기억나는 한편으로 삼국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미니 인물사전을 만들 정도로 열광했던 기억이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역사, 사회, 사회과학, 심리학, 철학 정도였다.

 

당연히 대부분 까먹었다. 감각과 자극이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 좋은 습관이 꾸준히 이어지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한때 가졌던 좋은 습관은 지금까지도 큰 밑천이 되어 주었다. 다양한 단어를 활용하거나 원활히 글을 쓰거나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전반적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앞서 있을 수 있었고, 이는 글쓰기로 자신을 표현하는 세상에서 꽤 편리한 일이었다. 많이 보고 많이 쓰면 암기와 인출을 넘어 디자인된 표현을 출력할 수 있고, 독서와 작문 과정에서 맛깔나는 표현을 찾거나 쓰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드물다.

 

그러나 현대사회가 어떤 곳인가! 수도 없이 많은 글을 읽고 쓰며 연구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교수님조차도 서마터폰을 사용하다 보니 긴 글을 읽기 어려워졌다고 토로하는 곳이다.(누구신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많은 숏츠에 뇌가 절여진 나라고 자유로울 수 있겠나. 글을 쓰는 시간은 드물어지고, 쓰기 시작하면 마무리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입대 후 매일 작성하려 애썼던 일기와 짬짬이 참여했던 여러 공모전들은 밑천을 쌓는다기보다는 꺼내 쓰는 시간에 가까웠다. 얼마 전, 기어이 밑천이 다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결국 다시 읽기로 했다.

 

어떻게 읽어야 할까? 돌이켜보면 필독 교양서 따위를 읽은 적은 없었다. 끌리는 대로 잡아 읽었던 게 전부여서 '아는 척'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은 한편, 어떻게든 양을 축적하여 질적 전환을 이루어냈기에 밑천을 쌓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정답은 없다.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은 책을 끝까지 읽으려는 강박을 내려놓고 읽다가 재미없으면 다른 책을 잡으라고 하는 한편 최재천 교수님은 누군가가 집대성한 지적 결과물을 대할 때는 치열하고 전투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하셨다. 각자의 방식이리라.

 

결국 해내는 것이 중요하므로 어렵지는 않되 생각거리가 많을 법한 책들을 골라 빌렸다. 지적 허영으로 인해 사서 쌓아두고 읽지 않은 책이 한가득인데, 업보를 더하지 않고 빌리는 것으로 대체했다. 읽다 보면 이미 쌓인 책장의 업보(?)들 또한 청산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겸사겸사 인스타그램에 인상깊은 문장을 남겨두고 블로그에는 그 문장에 관한 생각을 자유롭게 끄적여 볼 예정이다. 시작만 창대했던 인생사의 궤적이 다소 염려되기도 한다. 아무쪼록 즐기면서, 뿌듯하면서, 밑천을 쌓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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