讀: 축적

[독후감]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매번 꺾이는 마음 2023. 4. 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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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YES24

 

에세이라는 단어가 이래저래 보편화된 마당에 표지에 '산문집'이라고 적힌 것부터 신선했다. 저자의 칼럼, 영화평론, 인터뷰 등이 묶여 있는데 읽기는 어렵지 않지만 인상적인 대목을 자주 만날 수 있다. 핸드폰과 인터넷도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 수많은 군중을 광장으로 불러 모을 수 있었던 DJ를 흥사단 건물 화장실에서 마주했던 것과 같은 재미 쏠쏠한 일화가 구석구석 숨어 있다. 책을 다 읽은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잊혀지지 않는 부분이 몇 있다.

 

1. 행복한 느낌은 오래 지속될 수 없기에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는 소소한 근심을 압도할 만한 커다란 근심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마음대로 축약하여 옮겼음에도 다시 고개가 끄덕여진다. 소소한 근심을 누린다는 내용을 행복으로 재정의하여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기존에 생각하던 행복의 느낌에 대해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 등의 비유가 읽기에 맛있다.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고 한다. 걱정거리도 아닌 것을 걱정하는 것이 행복이다. 크게 어렵지 않은 조건들을 모아 두면 그 조건을 모두 충족하기가 어려운 만큼, 행복한 상태에 '소소한 근심'정도를 포함시켜도 좋겠다.

 

2. 책은 인류가 발명한, 사람을 경청하게 만드는 정말 많지 않은 매개 중 하나죠. 그렇게 경청하는 순간 우리가 아주 조금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겁니다. 자기를 비우고 남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자세요.

 

인터뷰 내용의 일부이다. 독서에 대해 경청의 관점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인지 역시 신선하게 다가왔다. 독서가 경청하게 '만드는' 매개인 것은 독자가 자발적으로 책을 펴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따위의 문장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글의 묶음인 책에 대해서도 경청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다. 다만 경청해서 더 나아진다고도 확신하지 않고, '아주 조금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자기를 비우고 남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자세로도 반드시 나아진다는 법이 없는 것이다. 

 

3. 화전민이나 프리라이더가 아니라 조용히 느리게, 그러나 책임 있는 정치 주체로 살아보고야 말겠다는 열정을 가져보는 거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열정이란 그 자체로 지나치게 큰 야망처럼 보인다.

 

조용히 느리게, 책임 있는 정치 주체로 살아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 '누칼협'과 '알빠노'에 대해 지인들과 얕지 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고 하는 이들은 칼의 종류를 하나밖에 모르거나 협박의 형태를 물리적으로만 이해하는 것 같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내가 알 바냐고 이야기하는 이들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순간 그 자신의 슬픔 또한 누구에게도 알 바 아니게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내 옆으로 들이닥친 슬픔의 신이 내게 들이닥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억지로 열정을 태우기에는 어렵겠으나 촛불 하나 만큼의 온기는 나눌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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