讀: 축적

[독후감] 전지적 건설 엔지니어 시점

매번 꺾이는 마음 2023. 5. 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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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YES24

 

근 한 달 만의 독후감이다. 바빴느냐고 하면 안 바빴던 것은 아닌데, 일은 일대로 하면서 시시각각 허물어지는 마음을 다시 쌓아 올린다거나, 허물어진 채로 두고 시간을 막 써대기 바빴다. 그런 가운데 접한 양동신의 "전지적 건설 엔지니어 시점"은 이래저래 담아갈 구절과 생각이 많은 책이었다.

 

책은 크게 두 방향이 교차하며 진행된다. 하나는 저자가 이끄는 대로 건설 엔지니어 시각에서 세상을 다시 바라보고 재해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랜 시간 건설 엔지니어로서 살아온 저자가 일과 삶에 대해 느낀 점을 공유받는 가운데 독자가 자신의 삶에서 해야 할 일과 그 일에 기초한 자신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이끄는 방향이다. 옛날에 교수님이 주최하는 독서모임에서 좋은 책의 기준을 꼽아 보라시기에 첫 번째 기준으로 '얇은 책'을 이야기한 적 있었다. 당시 교수님의 공감은 얻지 못했지만 내 기준에서 좋은 책은 그 내용만큼이나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고 여겼다. 한 손에 쏙 들어오며 200여 쪽 남짓인 이 책은 정확히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건설 엔지니어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세상부터 흥미롭다. 흔히 우리가 물의 소중함 공기의 소중함 등을 이야기할 때 그것이 당연하여 쉽게 느끼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듯, 도시가 갖추고 있는 인프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24시간 시설관리공단에서 순찰하고 매년 수억 원의 유지보수비를 통해 사회적 편리가 유지되는데, 그것이 너무 당연하여 한 번 고장을 일으키면 온갖 비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자연적인 홍수와 강의 범람을 어찌할 수 없어 제약을 받았던 때가 오래되지 않았는데, 그를 극복하고 도시계획을 하는 것이 모두 건설기술의 발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상당히 설득력 있는 지점이었다.

 

유현준 교수의 책에서 인간의 삶이 철근콘크리트의 발명으로부터 크게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아마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책이었던 것 같은데, 그 책에서 철근콘크리트의 무엇 때문에 그런 변화가 있었는지를 보지는 못한 것 같다. (내가 놓쳤을 확률이 매우 크다) 이 책에 따르면 재질이 다름에도 외부 변화에 따른 철근과 콘크리트의 물성이 거의 비슷해서 한 몸처럼 작용하고, 콘크리트는 철근의 부식을 막아주며 철근은 콘크리트를 더욱 견고하게 해 준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쾰른 대성당과 같이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건축 기술로 지어진 건물보다 현대의 아파트를 더욱 위대하게 본다. 오랜 시간 많은 국민이 고통받았으며 공간 활용도도 떨어지는 건물과 비교하면 아파트는 더욱 적은 비용으로 국민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질 때 그것이 도시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나, 저류지를 조성하여 수해를 막아내는  것 등등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알기 어려운 내용들이 알차게 담겨 있었다. 예측 가능한 구석은 인천항이나 부산항의 다리가 유독 높게 설계되는 것이 선박의 항행을 위한 것이라는 정도였다. 건설현장을 주제로 한 인상적인 이야기도 여럿 있었다. 폭우로 공사가 지연되자 인도인 현장 작업자들에게 시공 기간을 빠르게 당기면 햄버거 세트와 호텔에서 술을 마시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여 사비로 100만원 가량을 지출하게 된 이야기(역시 인간은 인센티브에 움직인다)는 조직 구성원과 신뢰를 쌓는 일면을 보여준다.

 

건설현장에서 한끗 차이로 생사가 오가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사무직 노동자가 보다 서서히 죽어간다면 건설현장 노동자는 단말마를 내지를 틈도 없어 보인다. 건설 구조물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볼트가 총알처럼 튀어나온다거나, 갑작스러운 비에 물이 고인 웅덩이가 식별되지 않아 현장 시찰 중 갑작스럽게 물웅덩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등의 일이 생기는 것이다. 안전불감증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이후로 건설안전에 대한 부분이 많이 개선되기는 하였으나, 흔히 선진국들이라고 일컫는 나라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일상에서는 알 길이 없는 인상깊은 내용의 연속이었다.

 

더욱 기억에 남았던 것은 세상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이다. 어렸을 적 진로를 이야기할 때 이도 저도 안되면 회사원이 되어서 돈을 번다고 말했다는데(S와T일 것이다) 건설 엔지니어로서 저자는 누구보다 직업의식과 사명감을 갖추고 있다. 본인이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지만 토건의 구조에 은행의 자본이 개입하며 대출이 당연해지고부터는 일과 병행하며 경제대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고 소식에 그 스스로도 항상 경각심을 잊지 않으려 애쓰며 건축을 통해 공동체가 얻을 수 있는 편익과 사회적 기여를 생각하는 모습은 먹고사니즘과 확실히 거리가 있었다.

 

삶의 방향에 관한 저자의 이야기는 현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되 최대한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stx조선을 예로 들며, 유행과 트렌드도 파급력이 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지점에서 실력을 쌓아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내용이 정확한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그렇게 실력을 쌓아올려 개인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을 어떤 선배가 등산에 비유했다고 한다. 정상에 서고야 그 다음이 보이며, 정상을 찍어야 내려갈 길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 한다. 그러게나 말이다. 나도 산 중턱 어딘가에서 애꿎은 등산화나 탓하며 투덜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저자가 쌓아온 역사적 지식과 인문학적 소양은 내용을 더욱 풍부히 하고 있다. 내용 자체도 신선하지만 저자가 걸어온 길이 얼마나 진정성 있고 단단한 길이었는지 우러나오는 책이다. 자신의 길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면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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