讀: 축적

[독후감] 어떤 양형 이유

매번 꺾이는 마음 2023. 3. 21. 21:54
반응형

 

이미지 출처: YES24

전자책은 인상 깊은 구절을 담기 쉬우나 책장 넘기는 재미가 없어 읽는 맛이 덜하고, 종이책은 읽는 맛은 있으나 인상 깊은 구절을 담거나 정리하기가 어렵다. 이론이 아니라 삶이 담긴 에세이 종류의 책을 읽을 때 종이책을 선호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양형 이유』는 종잇장을 넘기며 전자책의 간편한 구절 수집을 그리워하게 한다. 책은 판사의 입장에서 본 법정의 이야기와 함께 법과 정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본인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냈다. 수많은 정의론을 접했고 그것이 모두 본인 속에 있지만, 아직도 자신은 법과 정의에 무지하다며 판결의 난해함을 말하는 까닭에 납득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책의 끝에서 저자는 "정의할 수 없는 모든 개념의 종착점은 사랑이어야 한다"라며 법도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인자함은 지나쳐도 화가 되지 않지만 정의로움은 지나치면 잔인하게 된다"라는 소동파의 시구를 인용하며, 인간을 다루는 이상 정의는 법의 전부가 될 수 없다고 한다. 법을 잣대로 하여 누구보다 차갑게 사건을 판가름하는 판사의 말이기에 더욱 울림이 있었다. 나 자신의 오만 때문이건 명백한 타인의 잘못 때문이건, 민주주의 사회의 지극한 어려움은 동료 시민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온 까닭에 저자의 말이 더욱 와 닿았다. 그는 모든 단어를 포용할 수 있고 모든 사물에 조응하는 사랑을 언어와 대치시킨다.

 

이는 법적인 조치가 최후의 수단이라고 여겨 왔던 평소의 생각과도 통했다. 문유석 판사의 글이었는지 김웅 검사의 글이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상호 합의를 끌어내는 조정위원들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오랜 감정의 골을 풀고 입장차가 조정되어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합의되는 사례들을 접하며 법적 조치는 가장 최후에 사용되어야 하는 차악의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판결에 따른 손익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공적 관계이거나 분명한 악의에 대한 단죄를 배제한다면, 법정에서는 개개인이 가진 합리와 당위성을 법리적으로 따질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 간 마음의 문제로 여겨진다. 법적 절차를 밟는다는 것은 접점이 보이지 않고 너덜너덜한 개인 간의 심리(心理)에 대해 국가권력의 법리(法理)를 통해 강제로 지져 때우는 것이다.

 

수십년을 법과 함께 보낸 판사가 스스로의 정의에 대해 자신하지 않으며 도달한 결론이 사랑이라면, 동료 시민을 사랑하려 노력하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길이더라도 꾸준히 걸어갈 가치가 있는 길임에 분명할 것이다. 나이를 먹고 눈물이 많아지는 것이 이해할 수 있는 슬픔의 종류가 많아져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다. 법정의 이야기임에도 눈시울을 붉힐 만한 구석이 많다. 5천만 명이 있다면 5천만 개의 방언이 있다는 표현처럼 책에 소개된 구구절절한 사연과 슬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으나, 그 누구의 인생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배움이 짧고 기억력이 나빠 다시금 누군가가 미워질지언정 그 누군가 또한 자신의 자리에서 쉽지 않은 삶을 상대로 투쟁하고 있음을 조금만 오래 기억해보기로 하자.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