讀: 축적

[영화감상]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매번 꺾이는 마음 2023. 4. 8.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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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9일 개봉

2시간 남짓의 장편을 본 것이 오랜만이다. 숏츠나 릴스의 짧은 영상이 대중화되며 긴 영상이 견디기 어려워지고 그로 인해 영화관의 운영이 어려워진다는 이야기가 체감되었다. 주인공이 은둔중인 천재를 만나 실력을 기른다는 것이 2001년 개봉한 '파인딩 포레스터'와 내용이 거의 유사하여 표절이라고 하여도 무방할 정도라는데, 원작(?)의 내용은 모르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한국적 소재를 대입하여 대충 푼다'는 이동진의 평이 납득할 만 했다. 영화가 던지는 몇몇 생각거리 안에 한국적 소재들이 녹아들어 있는데, 자사고를 필두로 한 교육적 쟁점들이 함께였다.

 

사회배려자로 자사고인 동훈고에 입학하여 수포자로 살아가는 주인공 한지우(김동휘)는 대치동 주말 스파르타반에서 친구들과 함께할 수 없었다. 환경부터 다르니 성적 맞추기도 어려웠을 테고, 경제적 사회배려자는 아니라는 여주인공 박보람(조윤서)을 제외한 주변의 친구들은 주인공을 '친구'로 인정하지 않는다. 보람은 피아노 관련 진로를 희망한 것으로 보이나 어쨌든 집안에 재력도 갖추어져 있고 도무지 자리가 나지 않아 들어가기 힘들다는 학원에서 수업도 받는 형편이니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나 주인공보다는 조금 나은 형편이다. 줄세우기에서 시작되는 차별과 부작용이 함께 들어있다.

 

탈북한 천재 수학자 리학성(최민식)은 자신의 수학이 무기를 만드는 데 활용되는 것을 보고 환멸을 느껴 자유롭게 수학을 하고자 탈북하는데, 동훈고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며 학생들에게 '인민군'으로 불린다. 정작 리학성은 군대를 다녀온 적이 없다. 외부자를 바라보고 대할 때 어떤 시선과 규정이 작동하는지 은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쨌거나 그 외부자는 한국 대학입시와 무관하다. 리학성은 수학을 대학이나 좋은 직장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수학의 본질적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초점을 두고 풀이과정의 중요성을 주인공에게 전달한다.

 

"네가 답을 맞히는 데만 욕심을 내기 때문에 눈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야, 답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문이 무엇인지를 아는 게 더 중요한거다. 그게 수학이야"

 

굳이 수학에만 적용되는 구절이 아니다. 질문이 잘못되면 답은 나올 수조차 없다. 질문을 고칠 줄 아는 눈을 가지려면 출제자의 의도만 빠르게 알아채는 것은 그다지 쓸모 있는 기술이 아니다. 좋은 질문을 고민한다면 자연스레 과정에 신경쓸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질문은 깊이 있는 이해를 담보한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답을 틀리고도 '풀이 과정이 옳으니 계속하라'라는 리학성의 이야기를 버팀목 삼아 계속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성적지상주의에 흔히 이야기하는 '진정한 스승'의 모습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학교에서 외부자에다 탈북자인 리학성이 가장 스승같은 면모를 보인다.

 

정작 스승의 날에 축하받을 수학선생은 학교에서 '노벨상을 타와도 대학 입학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만, 피타고라스 어워드는 학교생활기록부에 쓸 수 있다!'라며 참여를 독려해놓고는 학원가에 문제를 유출하고 앉았다. 아, 물론 24학년도 대입부터는 수상경력도 미반영이라 피타고라스 어워드도 안타깝게 되었다. 우리의 비리선생은 주인공이 문제를 사전에 몰래 프린트했다고 의심받게끔 몰아가고, 전학으로 조용히 해결하는 형식으로 끝내려 했지만 차무ㅅ..아니 리학성이 시상식 단상에서 진실을 밝힌다.

 

수학자도 수학을 맘 편히 못하고 학생도 공부를 맘 편히 못하니 답답하고 안타까운 구석이 많다. 그럼에도 자기연민이 몹쓸 병이라 하니, 계속 다음으로 갈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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