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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레카] Epilogue

갑작스레 계획했고 갑작스레 떠나온 것 치고는 알차게 머문 17박 19일이었다. 11월이 되어서야 글을 마무리하지만 짬짬이 적은 덕에 더욱 길게 여행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완결이 늦어진 것은 온전한 나의 불성실이라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그렇게 완결에 스트레스 받아 가며 적을만한 이야기는 아니었기도 하다. 여행 중 돌아다니기 애매했던 시간에 붙잡고 썼던 것은 그 나름 성실했으니, 그렇게 넘어간다. 늘 뒷심이 약한 마당에 끝낸 게 어디인가 싶기도 하다. 성실히 퇴고하지 않고 휘갈겼기에 여력이 되면 다시 읽고 매끄럽게 다듬어볼 법도 하다. 에피소드 위주로 거칠게 늘어놓았지만 결론은 마주해보지 못한 세계에 직면할 기회를 끊임없이 찾아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유명 도시와 관광지 위주로 돌아다니고서 할 만한 이야기..

探: 여행 2023.11.07

[EU레카]런던 8일차 5 (23.08.22)

간단히 요기하고 기다리니 전광판에 게이트가 떴다. B35라니 딱 봐도 너무 멀다. 잉글랜드의 길쭉한 다리로 성큼성큼 내딛어도 족히 20분은 걸릴 만한 거리라 잰걸음으로 게이트를 향했다. 엘리베이터 타고 무빙워크 타고 걷고 또 걸어서 무리 없이 탔다. 불그스름한 노을이 깔린 하늘을 보며 창가에 앉으니 돌아간다는 게 실감났다. 이처럼 그냥 은연중에 스윽 찾아오는 게 한둘이 아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군생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던 사무실, 돌아가지 않을 것 같던 해외여행 등등 그냥 시간이 사람을 그리로 스윽 데려간다. 타임라인 어딘가에 원형탈모도 끼어 있을 것이다. 접하는 기간이 얼마든 떠나는 것은 묘한 느낌을 남긴다. '안녕'히계세요 라는 것이 일상적인 말이 아니었다면 약간의 울렁거림이 더 있을 테다...

探: 여행 2023.11.07

[EU레카]런던 8일차 4 (23.08.22)

따스한 햇살 아래 가벼운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가로운 런던의 오후를 느끼며 James Smith & Sons로 향했다. 출국 전부터 방문을 부탁받은 장소여서 일찍 가볼 법도 했으나, 귀국을 앞두고야 가게 되었다. 도심 한가운데 어느 대학에서는 하계 학위수여식이 열렸는지 가운을 입은 졸업생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슬리데린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한 40분 설렁설렁 걸었다. 오래 걷기에는 캐리어가 꽤 거추장스러웠으나 아무래도 관계없었다. 1830년에 설립된 전통 있는 곳으로 우산 손잡이 조각이 멋지고 독특하게 디자인된 것이 특색이다. 특색 있는 우산은 주로 웹사이트 이미지에 있었는데, 가게 안에는 그러한 우산이나 지팡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마 인터넷으로 주문제작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 ..

探: 여행 2023.10.31

[EU레카]런던 8일차 3 (23.08.22)

말 그대로 'LORD NELSON'이다. 역사적인 맥락이 고려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세인트 폴 대성당보다는 확실히 친근한 외관이다. 아무나 찍힌 것 같은 사진이지만 가게 안으로 앞장서는 마이클을 확인할 수 있다. 전 직장 동료들과 즐겨 온 곳이라는데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넬슨 제독의 배는 무슨 추수감사절 화물선마냥 생겼다. 넬슨의 초상화를 비롯하여 알록달록한 총천연색의 가렌드와 온갖 포스터, 옛 소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저런 분위기지만 적을 단숨에 제압하는 사자후나 나쁠레옹을 막아내던 수병들의 군가는 제한되고 있며, 바다를 호령한 제독답게 바닷속을 널리 호령한 스펀지밥을 전령으로 고용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바닷속에서 비건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상당히 신뢰가 간다. 2017년, 채식주의자로서 한국..

探: 여행 2023.10.30

[EU레카]런던 8일차 2 (23.08.22)

테이트 모던에서 한 시간 남짓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길게 설명해 놓은 안내판이다. 건물이 양쪽으로 높게 올라가 있어서 그냥 한 바퀴 걷기만 해도 3~40분은 족히 걸릴 만한 규모였다. 이런 곳이 입장료 무료라니, 한국의 전시회 티켓 가격을 생각하면 생경한 지점이다. 무료로 가이드 투어와 질문을 주고받는 자리도 마련되어 있다. 도슨트까지 그냥 받을 수 있으니 가히 김혜자 선생님의 컨설팅을 받았다고 짐작해볼 만 하다. 첫 타임을 대놓고 점심시간에 배치하여 미술에 진심인 소규모 인원만 선별하는 전략적인 구성을 관찰할 수 있다. 어디서 많이 본 작품들과 함께 마티스, 자코메티, 몬드리안, 잭슨 폴록 등등 어디서 많이 들어본 작가들이 수두룩하다. 주마간산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여건이 조금 아쉽지만 말 타면서 ..

探: 여행 2023.10.23

[EU레카]런던 8일차 1 (23.08.22)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뽀시락대는 소리에 뭔가 하고 보았는데 어떤 작은 체구의 동양인 여성분이 30인치에 육박하는 캐리어를 꾸리는 소리였다. 나만 체크아웃인 게 아닌 모양이다. 짐의 구성이나 쓰여진 글자를 보아하니 중국 분 같았다. 곤히 잠들어있는 양꿍이에게는 괜히 혼자 정이 들어 배 위에 감자칩이라도 하나 올려 주고 나올까 싶었지만 딱히 가진 게 없었다. 1층 데스크에 문의하니 짐 보관이 유료라 조금 불편하더라도 캐리어를 갖고 나가기로 했다. 테이트 모던에서는 짐을 무료로 맡길 수 있다고 했다. 버스로 테이트 모던 근처에서 내려 조금 걷기만 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오니 세탁물을 싣는 트럭이 줄지어 서있었다. 테이트 모던도 식후경이라 샌드위치에 커피를 먼저 충전하기로 했다...

探: 여행 2023.10.23

[EU레카]런던 7일차 3 (23.08.21)

20여 분을 기다려 간신히 라면을 끓일 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찬장에 얌전히 있었던 주제에 캠핑장 냄비처럼 생긴 친구는 라면의 맛을 한층 더해주는 느낌이다. 한 젓가락 먹자마자 생각보다 꽤 매운 맛에 조금 놀랐다. 주방의 사모아 경비병과 푸실리파스타를 나누어 먹은 여성에게 다가간 후, 경비병을 가리키며 '저쪽 신사분께서 보내신 겁니다'라고 한 젓가락을 나누어 주는 것만으로 우리 경비병의 행복한 저녁시간을 방해하기 좋은 맵기였다. 아, 나무젓가락은 당연히 한국에서 챙겨갔다. 나는 30년 넘게 기다려 간신히 유럽에 왔는데 이 친구는 건방지게 내게 업혀 1살이 됐을까 말까 한 시점에 런던에 왔다. 괘씸함에 몸을 빨갛게 물들여 주었다. 라면을 먹는 가운데에도 여전히 어느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시끌벅적하게 공..

探: 여행 2023.10.17

[EU레카]런던 7일차 2 (23.08.21)

내셔널 갤러리의 정문은 훨씬 더 웅장했다. 건물 왼쪽 편은 아스테릭스가 열심히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판테온을 연상케 하는 웅장한 정면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갤러리 내의 대략적인 분위기는 아래 사진과 같다. 작품 감상하는 법 쥐뿔도 모르는 채로 파리에서 몇 개 주워들은 것조차 희미한 가운데 보아도 모네의 작품은 인상적인 표현을 보인다. 수련은 오랑주리에서 본 연작이 워낙 임팩트가 강해 그만큼의 감동은 들지 않았다. 곤장 맞다 회초리 맞으면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단순히 실제와 똑같이 그리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느낌으로만 표현하는 것도 아니라, 그 사이 어딘가의 오묘함이 자꾸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외에도 반 고흐, 피카소 등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았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에픽하이의 ..

探: 여행 2023.10.16

[EU레카]런던 7일차 1 (23.08.21)

크게 세 가지의 야속한 점이 있다. 머리가 아무리 느긋하고 싶어해도 눈이 일찍 떠져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 눈이 일찍 떠질 것이면 컨디션이라도 상쾌할 것이지 몸은 여전히 뻐근하다는 것, 여자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에리얼의 가호로 하루 푹 쉬지 않았다면 방에만 틀어박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귀국을 하루 앞둔 마당에 어설프게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몸을 깨울 카페인이 필요했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였다면 아메리카노를 다소 구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지만 여기가 어딘가. 세계사의 말썽꾸러기이긴 하지만 법도만은 바로서 산업혁명의 가호 아래 잉글랜드 유통업계의 태양신인 테스코 익스프레스의 보호가 미치는 러셀 스퀘어다. 대기업이 뽑아주는 커피와 샌드위치를 들고 길을 나섰다. 우선 러셀 스퀘어 공원 벤..

探: 여행 2023.10.16

[EU레카]런던 6일차 3 (23.08.20)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가까워 있었다. 북적이는 사람과 익숙한 풍경들 속에 딱히 찍을 사진도 없어 기억도 희미하다. 저녁을 굶지는 않았을 텐데 찍은 사진은 없는 것을 보니 와사비&벤또에서 초밥세트를 산 것이 틀림없다. 내 행동을 반추한 결과 맛있는 것은 먹고 싶지만 딱히 새로운 것은 아닌 무언가를 골랐을 것 같은 느낌이다. 마이클과 출국일인 8월 22일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처음으로 분실물이 발생했다. 멀티플러그가 없었다. 에리얼의 집에서 나오기 직전까지 충전하고 꽂아 썼으니, 흘렸으면 노팅엄 역밖에 없는데 딱히 멀티플러그가 떨어지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렇다고 멀티플러그만 소매치기를 당했다기에는 뭔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관광객에게 멀티플러그를 가져간다는 건 마치..

探: 여행 2023.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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