探: 여행

[EU레카]런던 5일차 2 (23.08.19)

매번 꺾이는 마음 2023. 9. 25. 23:07
반응형

여기서부터는 노팅엄 1일차로 적어야 맞지 않나 싶지만 편의상 런던으로 통일한다. 황급하게 찾아간 승강장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크... 이게 플랫폼이지

 

내가 앉은 라인까지 포함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선반에 짐을 올려두고 있었다. 소매치기다 뭐다 말은 많지만 그게 그렇게 문제면 선반이 왜 있나 싶기도 하다. 내 짐도 올리려다 짐을 올려둔 사람들이 싹 다 관광객일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어 일단 갖고 있기로 했다. 원체 사람의 생각이란 불완전하다. '아 왜 빨래만 하면 비가 오냐'가 아니라 '일기예보 보고 빨래해야지'가 조금 더 합리적인 것처럼, 나도 조금 더 안전한 쪽에 선 것이다. 창 밖을 구경하다 글을 쓰다 하며 두어 시간을 내달려 노팅엄에 도착했다.

 

 

말로야 뭐 예약하고, 기차타고, 도착했다. 하면 그만이지만 예매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노팅엄에 초대해준 에리얼의 말대로, Trainline앱을 통해 차표를 사려 했는데 맨날 코레일톡만 쓰던 사람이 잉레일톡에서 헤매는 것은 당연했다. 이런저런 과정들이 겹쳐 있기에 여행은 그 자체가 배움이다. 하루 자고 일요일에 가라는 말에 일요일 차편까지 예약했다. 그러나 에리얼의 집이 맨스필드에 있어, 돌아오는 기차는 맨스필드 역에서 타야했다. 대강 알아듣고 표를 다시 끊으려는데 에리얼이 맨스필드에서 노팅엄으로 가는 표를 예매하여 보내왔다. 한국에서 만났을 때 가벼운 기념품을 전달했던 게 전부인데, 무언가 넘치게 받는 느낌이다.

 

한밤 자는 것도 그렇다. 듣기로는 연인인 에릭과 지낸다고 했는데 둘이 한 방에서 자고, 나는 매트리스가 있는 다른 방에서 자면 된다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해골물의 나라에서 온 내 마음은 역시나 먹기 나름이라 막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니까, 도착하는 날은 노팅엄 시내를 돌아본 후 맨스필드로 가고 다음 날은 맨스필드를 둘러보고 바로 맨스필드 역으로 가는 것이었다. 일정을 온전히 이해할 무렵 에리얼은 노팅엄에 도착하는 시간이 조금 늦어질 것 같다며 연신 미안함을 표했다. 역을 좀 구경하며 기다리면 괜찮을 것이었다.

 

사실 워낙 받는 게 많은 처지다. 초대도 해주고 시내 구경도 시켜주고 재워주기까지 한다는데, 엄마 욕만 아니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에리얼이 갑작스럽게 내 뺨을 두 대 갈긴다고 해도 첫 번째는 사과부터 해보고 두 번째에 화낼 일이었다. 노팅엄역에서 한 20분 기다려 에리얼을 만났다. 에릭의 차를 타고 노팅엄 시내로 향했다. 에리얼이 한국 문화와 친숙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역만리에 사는 외국인의 차에서 DJ DOC의 노래가 나오는 것은 생경하다. 심지어 케이윌의 발라드까지 좋아한다고 한다. 'K-', will. 문화 승리를 예견한 작명이 참으로 심오하다.

 

플레이리스트만 듣고 있으면 내가 더듬더듬 영어를 하는 것보다 에리얼과 에릭이 한국어를 더 잘 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배를 먼저 채울 것인지 구경을 먼저 할 것인지 묻기에 구경을 골랐다. 점심을 먹기에는 살짝 이르기도 했고, 아침에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덕에 크게 배고프지도 않았다. 전통음료의 든든함을 등에 업고 수목원부터 구경하기로 했다. 마침 발의 물집에 크게 신경이 가지 않았는데 동행이 생겨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허벅지가 너무 아프다고 호소하는 사람을 위해 그의 팔뚝을 세차게 꼬집는 민간요법과 같은 원리인 듯 싶다.

 

해는 따갑지 않았고 구름도 뭉게뭉게 자리하여 날이 선선했다. 안내판에는 'Green Heritage Site'라고 쓰여 있었다. 한국어로는 대충 그린벨트라고 생각했는데, 그린벨트가 딱히 한국어가 아님을 깨닫고 실소했다. 그 순간 에리얼이 나를 보더니 환하게 따라 웃었다. 처참한 리스닝 실력 덕에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내가 그 장소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잘 관리된 조경은 물론, 물가 근처를 자유로이 배회하는 오리들이 자유로운 분위기를 더해 주었다. 런던같은 도심에서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여유다. 슬슬 배가 고파오고 있었다.

 

 

오리도 짝이 있는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