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지도를 따라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던 참에 지나가던 노신사께서 이 정류장에 버스가 서지 않고, 한 정거장을 걸어가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구글도 간혹 틀리는 때가 있어 삐쭉한 입으로 다음 정류장까지 거의 도달했을 무렵, 멀리 뒤에서 내가 탈 버스가 질주하고 있었다. 빨간 2층 버스임에도 불구하고 힘차게 김을 내뿜는 증기기관차처럼 느껴질 정도다. 지금 못 타면 또 길에서 10분 넘게 기다려야 할 터, 나도 꼬마 기관차처럼 열심히 질주했다.
이래저래 놓치고 밀리고 하면 숙소 들러 코인 빨래방에 가려는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었다. 간신히 버스를 잡아탔는데 자리가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가서 중간쯤 서 있었는데 뒤편에서 누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자리가 없었는데, 갓난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품에 안아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 감사를 표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내 왼편에 앉은 어떤 조나단이 갑자기 내게 끊임없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한국인이냐는 물음부터 시작해서 기아자동차가 정말 좋으며 차 값은 싼데 유지보수비용이 비싸 그것을 사기 어렵다는 등 내가 별로 관심도 없는 이야기를 심지어 영어로 들으려니 조금 고역이었다.
쏘니에 대한 감사함이 슬슬 바닥날 무렵 그가 음악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는 그나마 관심이라도 있는 주제라 몇 마디 듣고 있었는데, 일렉트로닉과 하우스 뮤직을 좋아한다기에 한국 발라드와 팝송을 좋아한다고 하니 이번에는 조나단이 시무룩해졌다. 그러나 그는 지치지 않고 코벤트 가든의 '스시삼바'를 아는지 묻는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일본 음식점인데 며칠 뒤에 가기로 했다면서 일본 여성들이 좋다고 한다. 연신 자신의 주먹에 입을 맞추었다 떼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데, 혹시 내가 모르는 어떤 신호가 있는 것인가 싶었다. 실제로 당일에 찾아보았는데 가게가 실제로 있기는 했다.

낮에 느낀 것처럼 남에게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고개를 돌려 조나단과 나를 바라보았다. 곤란한 상황이 생기기 전에 퇴로를 궁리하던 찰나, 앞앞라인의 자리가 하나 비었다. 그러나 신사의 나라에서 비신사적으로 티를 내며 잽싸게 앞으로 옮기기는 다소 껄끄러웠다. 잠시 궁리하다가 오른쪽의 어머님께 아이를 다시 앉히라고 이야기하고 자연스레 앞으로 이동하며 조나단에게 '스시삼바' 홈페이지를 보여주었더니 이 곳이 맞단다. 홈페이지 어디에도 재패니스 걸에 대한 내용은 없었지만, 그렇게 숙소 근처까지 별 일 없이 돌아올 수 있었다.
빨래를 챙겨 어제 찾아둔 코인빨래방으로 향했다. 시설은 어떨 지 모르나 파리에서보다 가까이 있어 신난 참이었다. 이래저래 계산해보니 오늘이 빨래 신경쓰는 마지막 날이기도 하여, 조나단의 행복을 빌어 줄 정도로 기분이 나아졌다. 빨래방의 기본 시스템 자체는 파리와 크게 다른 게 없었는데 여기는 카드가 되지 않았다. 카드 관련 이슈가 생길 때마다 파리의 로베스피에르가 생각난다. 6유로 넘으면 카드도 받아주었었는데, 여긴 6파운드가 넘어도 현금을 내야 한다. 내가 모르는 어떤 신사적인 탈세 비법이 있는지 궁금해하며 빨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살짝 뿌려 조마조마했지만 소나기까지는 아니었다. 스시 앤 벤또에 혹시 마감 세일이 있을까 궁금하여 들어갔으나 그런 것은 없었다. 자그마한 세트를 포장해와서 아껴 두었던 불닭볶음탕면과 함께 먹으면 그럭저럭 훌륭한 저녁이 될 것 같았다. 빨래를 대충 갈무리하여 덜 마른 것들만 널어 놓고 공용공간으로 향했다. 여전히 호그와트 친구들이 왁자하게 북적거리고 있어, 구석에 자리잡고 배를 채웠다. 내일은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노팅엄으로 가는 날이라 아침 일찍일어나야 했다. 별 수 없이 9인실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용감무쌍한 행동 중 하나인 알람을 설정하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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