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브가이즈에 들어가니 텐가이즈가 바삐 일하고 있었다. 햄버거 단품이 만 원에 육박한다. 점심 때우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갔다. 가는 동안 기가 막히게 날이 갰다. 전망대에 올랐을 때 맑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약간 들었다. 버스로 사원 근처에 내려 조금 걷자 빅벤과 처칠 동상을 포함하여 여러 사람들이 쉬고 있는 풀밭까지 한 눈에 보였다. 곳곳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유로운 풍경과 그렇지 못한 물가를 체감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칠 말고도 다른 동상들이 풀밭 주변에 도열해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처칠의 뒷부분 알파벳 3개를 빼면 곧바로 교회가 된다는 것이다.헛소리다
동상을 일일이 둘러보거나 풀밭에서 여유를 느끼기에는 무리였다. 이미 오후 2시 30분 근처라, 웨스트민스터 사원 입장 마감이 3시 30분인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을 경우 입장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런던패스로 현장에서 입장하려면 줄을 서야한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었다. 홈페이지에서 시간대를 선택하고 예약한 사람들의 줄이 따로 있는데, 홈페이지에서 런던패스를 이용하여 예약하지 못한다는 것이 약간의 아이러니다. 바삐 걸음을 옮기던 중 사원 앞의 광경이 심상치 않았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줄이 꽤 길었는데, 3시 30분 입장이 아슬아슬해 보였다.
별 수 없이 한참을 줄서 입장했다. 수많은 영국 왕실의 인물과 위인들이 잠든 곳이라 바닥, 벽, 천장 할 것 없이 무언가가 새겨져 있었다. 세인트 폴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 차례대로 관람하였는데, 잘 보이는 바닥 한가운데에 무명용사를 기념하는 글이 장식되어 있어 기억에 남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곳이 가이드 상 두 번째 관람순서였다. 오디오가이드를 스피또 긁듯 문지르니 한국어로 내용이 나온다. 문화 특성상 성당 바닥에 안치된 다른 무덤은 밟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무명용사의 무덤만큼은 밟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프랑스 또한 마찬가지다.)
왕실과 더 밀접해서인지 내부는 확실히 세인트 폴 대성당보다 화려했다. 한평생 대장간에만 틀어박혀 망치를 깡- 깡- 내리치며 무기를 만들던 스미스가 훌륭한 무기를 만든 공을 인정받아 처음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오더라도 '어.. 폐하가 계신 곳인가..?'라며 바로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스테인드글라스가 특히 화려하여 공간 전체를 텅 빈 상태에서 찍고 싶었지만 공간이 화려한 만큼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밀려 들어왔다. 조금 기다렸지만 공간이 한가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강 타협하고 오디오 가이드를 따라 관람을 계속했다.
여러 왕가 인물들 중에도 엘리자베스와 메리의 무덤이 눈에 띄었다. 옛날 역사책을 읽으며 서쪽에 있는 어디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내 눈앞에 누워 있다니, 현실이지만 현실감이 없다. 왕가의 인물들 외에도 제인 오스틴, 샬롯 브론테, 헨델 등등 수많은 위인을 기념하는 석판과 조각이 사원의 벽을 따라 이어졌다. 시간에 쫓기면서 보기에는 다소 아쉬운 곳이라, 웨스트민스터는 런던패스가 있더라도 별도로 시간을 예약하여 아침 일찍 입장해볼 법 하다. 가이드의 마지막은 즉위식 때 왕이 앉는 의자였다. 역시나 스미스가 알아채지 못할 수 없도록 생겼다.
관람을 마치니 오후 4시 30~40분 근처였다. 그리니치 천문대까지 가기에는 조금 애매하다 느껴졌지만 일단 가 보기로 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근처에는 우버보트 정류장이 있어, 보트를 타고 그리니치 천문대로 갈 수 있다. 런던패스의 우버보트 1인 무제한 이용권을 활용하는 것이다. 내가 버스투어 탑승 시 대충 시내를 순환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패착과 비슷하게, 우버보트는 지그재그 형태로 템스 강을 누볐다. 강의 한편만을 따라 거쳐가는 것이 아니라 건너편에 섰다가 다시 이쪽으로 왔다가 하며 조선시대 나루터에서 흔히 보는 무빙을 하는 것이다.
빠를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래서야 그리니치 천문대가 닫기 전에 도착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이미 몸을 실은 이상 딱히 대안도 없고, 어디서 내리더라도 그리니치까지의 택시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니치에 내려서도 천문대까지는 약 15분 가량 걸어야 했다. 오후 5시 15분이 마지막 입장이라는 안내문이 나를 반겼고 오후 5시 22분에 도착했다. 전시관 입장은 어려웠지만 그리니치 주변 풍경과 커다란 망원경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무리하지 않고 숙소로 돌아가려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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