短: 조각

[短想] 기록과 정리

매번 꺾이는 마음 2023. 3. 21.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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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정리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지만 나는 이 둘에 대해 크게 소질이 없다. 독후감을 두어 편 올려 두었지만 책 표지를 적고 느낀 점만 중구난방으로 올려둔 것을 보면 곧바로 티가 난다. 지은이 소개라든지 출판사와 출판년도 따위를 갖추어 둘 생각을 하지 못하고 흥나는대로 하다 보면 저 모양이다. P형 인간이라 그런지 모르겠으나 그런 종류의 엄밀함에 대해서는 민감도가 영 떨어진다. 행정사무 일을 시작하고부터 가장 난감한 일 중 하나가 파일 정리다. 명확한 범주화를 통해 필요한 파일을 갈무리해 둔 화면을 볼 때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기록과 정리에 유독 취약한 까닭을 고민해보았는데, 모든 맥락을 섞어 총체적인 그림으로 이해하려는 경향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범주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 범주에 들어가는 일을 해내기 위해 생성되고 버려지는 파일들이 생기고 이 파일들은 대부분 분류하기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 분류가 까다로우니 일이 완료된 시점에서 더 이상 신경쓰지 않게 되고, 그러면 말 그대로 그 '잡채' 만 남는다. 잡채야 맛있기라도 하지 정리되지 않은 파일이나 폴더는 나중에 찾을 때 고생스럽기만 하다.

 

물론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겨 파일 이름에 보자마자 분류 가능하도록 라벨링과 유사한 조치를 취하거나, 수정한 날짜 순으로 정렬하여 어찌어찌 해 나가고는 있다. 더욱 쉽게 해낼수록 효율은 올라갈테지만 그런 형식의 정리와 기록은 내게 간편한 영역이 아니다. 해내면 그만이긴 하나 기록과 정리의 효용을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운 입맛만 다신다. 나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사마천도 본인이 진짜 중요한 사실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게 몇 년에 일어났는지 헷갈려서 기전체로 역사를 썼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헛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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