探: 여행

[EU레카]런던 8일차 3 (23.08.22)

매번 꺾이는 마음 2023. 10. 30.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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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점심을 책임지는 넬슨 제독

 

말 그대로 'LORD NELSON'이다. 역사적인 맥락이 고려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세인트 폴 대성당보다는 확실히 친근한 외관이다. 아무나 찍힌 것 같은 사진이지만 가게 안으로 앞장서는 마이클을 확인할 수 있다. 전 직장 동료들과 즐겨 온 곳이라는데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오른팔로 유유히 서빙중인 갑판장
승리의 함성과 군가를 금지하고 있는 모습

 

넬슨 제독의 배는 무슨 추수감사절 화물선마냥 생겼다. 넬슨의 초상화를 비롯하여 알록달록한 총천연색의 가렌드와 온갖 포스터, 옛 소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저런 분위기지만 적을 단숨에 제압하는 사자후나 나쁠레옹을 막아내던 수병들의 군가는 제한되고 있며, 바다를 호령한 제독답게 바닷속을 널리 호령한 스펀지밥을 전령으로 고용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바닷속에서 비건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상당히 신뢰가 간다. 2017년, 채식주의자로서 한국의 제육볶음을 맛보지 못했던 마이클에게도 적절한 선택지임을 알 수 있다.

 

남한사람 + 학생 = 20% off
부킹은 언제나 옳다

 

모든 가게의 첫 방문에는 마땅히 시그니처 메뉴를 주문해야 한다. 꼬부랑글씨가 가득하지만 주저 없이 'THE LORD NELSON'을 고르면 된다. 베이컨, 프라이드 에그, 머쉬룸, 체다, 해쉬브라운이 일만오천냥.. 이 아니라 15파운드다. 거의 2만 5천원짜리 버거세트인 셈이다. 에리얼과 에릭의 요리실력을 납득할 수 있는 순간이다. 뒷면을 보니 'THE VEGGIE NELSON'이 있다. 넬슨 경과 넬슨 푸성귀 중에 고르라면 나는 당연히 넬슨 경을 고를 것이었다. 그러나 도시 한복판의 버거 가게에서조차 채식이 보편화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 인상적이다. 한국 남성 식생활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지는 제육볶음과 스윙스 앞에서 마이클이 무력했던 것이 이해가 간다.

 

 

넬슨 경이 빅맥세트와의 가격 차이를 잠시 가늠하며 마음이 흔들렸던 나를 매우 꾸짖고 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포화지방, 트랜스지방 등 영양소를 골고루 갖춘 넬슨 경이 양심상 약간의 식이섬유를 곁들인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저 정도 굵기의 감자튀김은 흔치 않기에, 지나가는 갑판장에게 강원특별자치도를 아는지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확인은 받지 못했으나 친근한 곳과 공급계약을 체결한 것이 분명하다. 양도 많아서 어느 때보다 배불리 먹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른 맥도날드의 폭력적인 세계화는 빅맥지수 산출에나 유용할 뿐이다.

 

마이클이 내가 노팅엄을 어떻게 다녀왔는지 궁금해했다. 하기야 나도 마이클이 갑자기 담양 가서 한국인 친구에게 떡갈비를 대접받았다고 했으면 대단히 궁금했을 것이다. TESCO 샌드위치와 COSTA 커피를 먹고 Trainline으로 기차를 예약하여 다녀왔다고 하니 갑자기 내게 '이제 그냥 영국 사람이네'라고 한다. 하기야 나도 마이클이 김가네청국장에서 청국장을 먹고 단호박식혜로 입가심한 후 코레일톡으로 기차를 예약했다고 하면 한국인이 다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넬슨 경을 맛보는 나와 묵은지를 맛보는 마이클은 큰 차이가 없다.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업무상 한국에 가게 될 수도 있단다. 

 

 

짐을 찾으러 가던 중 웬 가소로운 광고가 보였다. 넬슨 제독을 영접하고 퇴궐하는 마당에 나부끼는 문지기가 귀여웠다. 테이트 모던으로 돌아가 마이클과 짐을 찾으니 오후 3시 근처였다. 육안으로 짐을 뒤적이는 검사가 유용한지 마이클에게 물었더니 아니라면서, 멀끔하게 차려입은 사람보다는 행색이 초라한 사람을 위주로 더 엄하게 검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마는 인간의 인식이란 얼마나 상대적이고 초라한가? 마이클과 내가 둘 다 검사당해서 하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마이클과는 다음을 기약하고 테이트 모던 근처에서 작별하니 오후 2시 근처라 6시간 있다 떠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출국 전부터 방문을 부탁받은 우산가게가 하나 남았고, 아쉬움을 만끽하며 조금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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