探: 여행

[EU레카]런던 2일차 4 (23.08.16)

매번 꺾이는 마음 2023. 8. 3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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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런던Top임을 체감하며 사실 아직 런던 탑을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닐까 의심할 무렵 버스 정류장이 나왔다. 돌아가며 세인트 폴 대성당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곁다리로 보았다. 두 곳을 묶어 한 번에 가면 좋겠다고 생각만 하고 숙소 근처에 하차. 하도 배가 고파 wasabi&bento에 들렀다. 다양한 초밥, 롤 종류와 카레볶음면 등 일본 음식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 8pc 정도 들어있는 초밥세트가 6~7파운드였고, 롤과 초밥 합쳐 10pc 들어있는 세트가 10파운드 조금 넘었다. 이건 그나마 가격차이가 좀 덜 나는 것 같다. 조금 저렴한 카레볶음면을 집었다.

숙소로 들어가니 창문이 아직도 열려 있었는데, 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내 바로 윗침대에서 똠양꿍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 조심조심 짐정리를 한다고 했으나 영국의 관물대가 협조하지 않아 꽤 큰 쇳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똠양꿍의 기색을 살폈는데 그는 여전히 숙면중이었다. 오히려 정 반대편의 침대 커튼이 걷어지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내 쪽을 살피기에 쳐다보았더니 간결히 인사를 건넸다. 배고픔부터 해결하는 게 급했다. 공용 휴게실로 내려가니 어제 봤던 친구들이 똑같이 왁자하게 떠들며 식사중이었다. 공용 주방 쪽은 정비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지만 다행히 전자렌지는 밖에 있었다.

카레볶음면을 데우며 새삼 전자렌지의 간편성과 유용성에 감탄한다. TV가 바보상자라면 전자렌지는 마법상자다. 그래서 호그와트 친구들이 여기서 식사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마법이 하도 강력하여 호일 째로 돌리거나 껍질도 까지 않은 계란을 돌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지만 그럼에도 전자렌지만한 반려가전은 없을 것이다. 그런 거 돌리지 말라는 경고문구는 분명 그런 거 다 돌려 보고 쓰였을 것이다. 누가 복어 먹고 죽는 거 보고도 분명 다시 복어에 도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 물론 두 번째 복어는 런던 탑에 갇힌 분들이 드셨을 가능성이 높다.

배고픔이 가시니 야경을 보러 가거나 소호 거리 또는 코벤트 가든을 구경하러 가볼까 싶었다. 발 컨디션이 영 아니어서 보류. 오늘도 꽤 걸었고 내일도 활동해야지 싶어 관뒀다. 아무래도 로마 군단병으로 복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에 부담이 꽤 간 것 같다. 그래도 예비역의 긍지가 있어 분리수거는 잘 해야지 하고 색이 다른 커다란 플라스틱 통의 뚜껑을 각각 열었는데 모든 쓰레기가 섞여 있었다. 호그와트 짓인가 조금 고민했으나 통 주변에 어떤 안내문도 쓰여 있지 않아서 나도 통만 헹구어 버렸다. 꽤 많은 가게에서 쓰레기를 분류하지 않고 하나의 통에 담으라는 안내문이 있기는 하다.

한국의 물품 재활용률이 높음을 다시금 실감했다. 공용 휴게실에는 호그와트 친구들 말고도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 가족 단위 여행처럼 보이는데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 공용 주방에서 요리해 먹거나, 헤드폰을 쓴 채 맥북을 펴고 무언가를 계속 타이핑하거나, 같은 선실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소소한 게임을 하며 파티를 여는 광경도 보인다. 꽤 북적거리는 가운데 나 혼자 글을 끄적이자니 약간 아쉽기도 했으나 마신 맥주의 양과 영어회화 능력은 반비례할 것이 분명하므로 조용히 구경하는 쪽을 택했다.

내 선실은 여전히 불이 꺼져 있었고 여전히 창문이 열려 있었다. 창문에 방충망도 없는데 벌레 한 마리 없는 것이 더 신기했다. 곤충마저 사람의 쉼을 방해하지 않는 신사적인 나라에서, 불도 꺼져 있는데 자꾸 관물대를 열기가 부담스러웠다. 혹시 몰라 서랍에 항시 자물쇠를 채워 두는데 자물쇠를 풀고 샤워도구까지 모두 꺼내기 부담스러운 것이다. 아까야 시간이 그리 늦지 않았으니 반대편 인삿말이 H로 시작했다지만 지금은 F로 시작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대강 꺼내 두었던 양치도구와 수건으로 몸을 헹구었다. 암순응이 되자 자신의 배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대자로 뻗은 똠양꿍이 보였다.

여기 보안도 믿음직한 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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