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 궁리

[후기] 당근마켓 문화상품권 대리구매 사기(3자사기)

매번 꺾이는 마음 2023. 3. 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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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자사기에 '연루당함'이 확정되었다.

아니나다를까, 예상대로 오전근무 중 계좌가 신고되어 모든 비대면 거래가 정지되었다는 알림이 왔다.

계좌가 신고되면 자동으로 내역이 공유되어 같은 명의를 가진 계좌의 비대면 거래가 모두 정지된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선제적 조치라는 것에는 수긍이 가지만 상품권을 통하는 3자 사기에 효과가 있기는 어려워 보인다.

피해자의 돈이 내게 입금되고, 내 문화상품권이 사기꾼에게 넘어가는 모든 과정은 사기꾼만 안다.

피해자와의 거래시기를 조정하고 내게 핀번호를 받아 온라인으로 현금화 내지 현물화를 마치면 그만이다.

 

법이 아무리 빨라도 주먹에 으깨지는 콧잔등을 보호해주기는 어렵다.

피해자가 뒤늦게 깨닫고 법을 찾는 시점에는 이미 무수한 죽빵(?)을 얻어맞은 이후일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낌새를 빠르게 알아채고 '어?.. 내일 병원 예약해봐야 할 것 같은데..'라고 생각한 것이 다행이었다.

다만 몇 가지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첫째. 월급날이 하루 남았다.

 

모든 계좌의 비대면 거래가 정지되고 은행 창구거래만이 가능하다고 알았을 뿐 그 구체적인 형태는 몰랐다.

글자 그대로라면 내 월급의 비대면 입금 또한 제한될 게 아닌가?

내 계좌의 입금제한으로 예약이체가 멈춰 모두의 월급 이체가 지연된다면 일면식도 없이 짜증을 사기에 딱 좋았다.

내가 종로에서 뺨을 얻어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지는 않지만, 종로에서 맞은 내 뺨따구를 남들이 알아줄 일도 없었다.

곧바로 은행으로 달렸다. 네 다리를 모두 사용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확인 결과, ATM을 이용한 입금은 불가하나 계좌에서 계좌로의 입금이체에 제한은 없다기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다만 비대면 출금은 제한되는 게 맞다고 하여 두 번째 문제가 생겼다.

 

 

둘째. 카드 대금 이체일도 하루 남았다.

 

경제감각이 취약한 사회 중년생이 으레 그러하듯 월급이 통장을 스치는 구조로는 당장 카드대금 출금이 문제였다.

주거래카드 어쩌구와 주거래은행 어쩌구가 겹쳐 우리카드 사용대금은 우리은행에서 별 문제 없이 인출될 수 있단다.

그러나 우리카드로 고정비용을 지출하고 KB카드로 막 사는(중의적 표현이다) 까닭에 약간 골치였다.

KB카드에서 카드대금 출금을 위한 가상계좌를 발급받고 그것을 은행 창구로 들고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입금은 문제 없으니, 들어오는 날 은행 창구에서 가상계좌로 이체하기로 했다.

이체되는 것은 카드 대금만이 아니었기에 온갖 종류의 자동이체를 재점검해야 했다.

 

 

셋째. 본인사실확인증명서 발급

 

비대면거래를 재개하기 위해 은행에 이의제기를 하려면,

1. 본인사실확인증명서, 2. 신분증사본, 3. 이의제기신청서, 4. 증빙자료가 필요하다. 

 

1번부터 발급 자체가 문제였다.

온라인으로는 안 되고 주민센터를 가야만 하는데 내가 퇴근하면 주민센터도 퇴근한다. 조금 일찍 나와서 또 달렸다.

우여곡절 끝에 발급받았다고 해도 다음으로 이의제기신청서에 전후사정을 상세히 기록하여 접수해야 한다.

생각했던 것과 달랐던 부분은, 정상거래가 인정된다면 내게 입금된 돈을 피해자에게 되돌려 줄 의무는 없다는 것이었다.피해의 구제절차는 모르나 사기꾼이 늘 귀신같이 단물을 빨아먹는 재주가 있음은 알겠다.자료 정리해서 메일 보내고 나니 밤이었다.

 

야근수당 없는 야근

 

자료를 확인하고 비대면거래가 정상화되는 데 최소 2주 정도 걸린단다.

절차상 거쳐야 할 단계가 많아서 그런 게 아니라, 단순히 사건의 건수가 많아서 그렇단다.

일주일 남짓 지나며 '역시 사형이 좋...' 까지 생각하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

일주일 정도면 사형까지는 아닌가? 라며 갸웃거리는 사이 뜻밖의 여정이 끝났다.

그러나 건수가 적어 일주일인 것인지, 카카오뱅크 직원들이 초과근무하여 일주일만에 끝낸 것인지 알 수 없으므로 역시 사형이 좋겠다. 인명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니냐고 항의하신다면 사기꾼은 사람이 아니라는 답을 드리고 싶다.

일이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만 덕분에 분주한 연말이었다. 직접적으로 사기를 당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머리가 좋아서 사기는 안 당해!'라고 자신하는 분들께 '머리 좋음'에는 여러 갈래가 있음을 재차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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