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 궁리

[小懷] 그러면서도

매번 꺾이는 마음 2023. 7. 29. 23:38
반응형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2년 간의 직장생활에 실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2021년 1월부터 지금까지 뜻대로 흘러간 것이 많지 않다. 코로나의 여파로 갑작스럽게 받았던 권고사직은 그나마 교생실습을 앞두고 있었기에 좋게 생각할 여지라도 있었다만, 이후 찾아오는 것들은 다소 버겁기만 했다. 새로 하게 된 대학입학업무는 하나부터 열까지 생소하기만 했다. 언제나 일보다는 사람이 문제이듯, 그곳에서 앞서 일하고 있던 친구와 관계가 어긋났다. 같이 자취하고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10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쌓아온 친구와 일한다면 보통 좋은 상황을 먼저 그리게 되겠지만, 어긋났다.

 

각자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그러한 부조화가 만든 결과라기에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흐름이었다. 내 스스로 수많은 부족함을 인지하고 있기에, 친구에게 '충고나 조언이라 할지라도 내가 너를 무시하거나 낮잡아 이야기하는 것 같으면 언제고 네가 먼저 나와의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전혀 가닥을 잡지 못하던 와중에, '뭐 좀 하자고 하면 한번에 그러자고 안해서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느꼈다', '같은 나이에 비슷한 처지의 다른 누구와 비교당하는 것이 싫었다'라고 들었다. 나와의 관계보다 중한 것이 있었구나 했다.

 

그런 줄 일찍 알았으면 1년 가까이 마음을 썩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쿨하게 꺼지라고는 못 하였겠으나 관계의 유통기한이 지났음은 일찍 알았을 것이다.  첫 번째 어긋남으로 속은 오래 썩였지만 좁고 깊은 관계를 주로 맺는 까닭에 쉽게 보내주기는 어려웠다고 치자. 그런 가운데에서 1년을 있으며 대학 입학 관련 업무를 경험했다. 첫 직장에서 주로 몸을 쓰는 일이 대부분이었기에 행정과 문서를 다루는 것도, 입학과 관련된 제반 업무도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그냥 해내는 것도 고역인 마당에 사적인 영역까지 편하지 않았으니 정신적 체력이 고갈되어 갔다.

 

'논문이나 써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대학원 수료 이후 다시 시작한 일이 대학 입학 업무였던 탓에, 입사하자마자 입시기간을 겪어야 했다. 이미 바쁘고 업무 외적으로도 평탄치 않은데 논문까지 생각이 갈 리 없었다. 학위논문이라도 완성해서 학위를 취득하고 연봉을 올리자 싶었고, 2022년 전반기를 몽땅 논문에 쏟아부었다. 일 많은 회사생활을 계속하며 난생 처음 논문을 쓰는 것도 고역이었다. 어찌어찌 완성하여 졸업이 예정되고 친구 또한 회사에 불만을 갖고 이직하게 되어 그냥저냥 일이 풀리나 싶었다. 결론적으로 학위논문을 썼다고 하여 연봉이 오르는 일은 없었다.

 

재미있는 점은 사무실의 거의 모든 사람이 빨리 논문 완성해서 연봉을 올리자는 식으로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팀장조차도 말이다. 그러나 결론은 입사 당시의 조건을 기준으로 계약이 연장되는 것이지 재계약 시 변동된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물어봤다. '그럼 학위 취득은 똑같으니, 계약 연장이 아니라 퇴사했다가 다시 입사하면 석사 기준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하니 그렇단다. 말도 안되는 불합리를 마주하면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결론은 학위 취득 후 연봉 상승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었을뿐더러 구성원의 권리 보장에 대해 그렇게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곳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근데 어쩔건데?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사람을 길러내는 곳이 사람 중한 줄을 모르니 아이러니하지 않나. 덕분에 배운 것도 있다. 동기의 설정을 '연봉 인상'으로 설정하니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자 모든 마음이 싸그리 꺾였다. 그러니까 주요 동기는 더 잘 신경써서 설정할 필요가 있고 더더욱 본질적인 것으로 지정해야 한다. 다만 '네가 뭘 할 수 있는데?'는 마찬가지라, 과정을 끝마쳤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다.

 

그럼 그 이후의 1년은 어땠나. 자격을 갖추고도 못한 대우를 받는 가운데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로 새로 온 사람들은 잘 가르쳐주라는 이야기나 듣고, 2022년 말에는 정량적으로만 보아도 새로 온 사람들보다 내가 한 일이 많은데 가장 낮은 수준으로 동일한 성과수당을 받았으며, 종국에는 계약 만료 통보까지. 그럼 1년 전에 칼같이 그만두었어야 맞는 것이었을까? 또 그랬다면 지금까지 숙련도를 올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돌이켜보아도 어디 옮길 만한 여건이 아니기도 했다. 다만 억하심정을 다스리되 불합리에 익숙해지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그 자체로 기력이 소진되는 일이었다.

 

다 끝난 마당에 굳이 이렇게 남겨두는 것은 스스로의 필화를 자초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남겨두는 것은 그러면서도 최선을 기울이려 애썼고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애쓰며 지나왔다는 것을 조촐하게 기념하고 싶어서이다. 어려운 와중에도 마음의 중심을 잡고 나누고 베풀면서 지내려 애썼다. 그래서인지 시원섭섭하지도 않고 그냥 시원하다. 갖가지 이유로 자기의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회피하거나 외면하는, 얄팍하고 옹졸한 꼬라지와 멀어진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흡족하다.

 

그들의 사정에 대한 고려가 너무 없는 걸까? 싶어 잠깐 고민했지만 어차피 그들도 나를 크게 살펴 주지 않았으니 쌤쌤으로 치자. 당신들이 나를 못마땅하게 여긴 만큼 나도 당신들을 못마땅하게 여길 뿐이다. 생각이 달라서 그렇고 각자의 사정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일 수는 있겠다만 정확한 말은 아닐 테니. 매번 마음이 꺾이는 공간에서 꺾이지 않고 다음으로 가려는 노력이 나한테 어떻게 자리잡혔는지 모르겠으나, 이 공간의 문법에 마냥 순응하고 지냈다면 결과적으로 그것은 삶과 인생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짓이기는 꼴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나와서 생각한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