探: 여행

[EU레카]자오둥공항 체류기 1

매번 꺾이는 마음 2023. 8. 5.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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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계약 만료로 인한 퇴사가 뜻밖의 유럽행을 부추기는 바람에 항공권을 찾아보게 되었다. 중국을 경유하여 로마로 가는 항공편이 50만원이다. 이건 못참지(라고 말하는 사람 대부분은 딱히 참을 생각이 없다) 싶어 부족한 돈은 역시 시간과 몸으로 때우자며 덜컥 예약했다. 첫 유럽 여행기라 EU레카다.  인천에서 청도 자오둥공항으로 날아가 12시간 대기한 후, 다시 상해 푸동공항으로 날아가 4시간을 대기한다. 그러고서야 상해에서 로마로 가는 12시간의 비행을 할 수 있다. 첫 번째 관문인 인천에서 자오둥이다.

중국동방항공을 탄다지만 당연히 인천공항에는 해당 항공사의 한국 직원분들이 계신다. 큰 어려움도 없고 20인치 캐리어에 작은 힙색 하나를 기내에 반입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일까지 모든 게 수월하다. 탑승 후 좌석은 조금 좁긴 하지만 1시간 20분 남짓의 비행이기에 견딜만 하다. 탑승하자마자 간식이라기에는 많고 끼니라기에는 적은 기내식을 챙겨준다. 식곤증을 잠시 즐기면 자오둥공항에 내린다. 청도에 생긴 중국의 신공항이라는데, 새로울 신에 걸맞게 인천에 비견할만큼 시설이 깔끔한 편이다.

안내판에 영어와 한국어가 병기된 것도 눈에 띄고 화장실에는 일회용 좌변기 시트가 있다. 화장실 입구에는 음용수가 나오는 정수기를 두었는데, 냉수는 없고 온수와 정수 뿐이다. 말라 비틀어진 여행자든 나처럼 기름진 여행자든 마다할 이유가 없는 환경이다. 착륙하니 6-7시였는데, 무비자로 경유할 수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과정을 확인하지 않은 까닭에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 새로운 양식의 임시 입국신고서를 다시 써야 했다. 그것은 내 앞에 서 있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잘생기고 앳된 한국인 배낭여행객도 마찬가지였다. 짐이 꽤 무거워 보여서 캐리어 위에 얹으라고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꼭 쥔 핸드폰에 여자친구 사진이 있기에 나만 힘내면 되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러니까 둘은 중국 공항을 경유하여 유럽(아마도)에 간다는 공통점과 함께 위와 같이 중요하고 부러운(내 입장에서만) 차이점이 있었다. 인연이 되면 여행 코스중에 마주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 경유임에도 불구하고 오성홍기가 휘날리는 심사대에서는 여권 인식, 얼굴 인식, 열 손가락의 지문을 모조리 인식해갔다. 공항 곳곳에 산재한 CCTV와도 무관하지 않겠으나, 많은 생각이 드는 지점이다. 어쩌면 이 글도 자동으로 인식-번역되어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지 읽힐 가능성이 있기에, 나는 중국 문화에 우호적이며 유럽을 가기 위해 잠시 체류중인 병약한 남조선 노동자임을 미리 밝힌다.

아무쪼록 성공적인 경유와 체력 안배를 위해서는 공항 노숙보다 공항 내 캡슐호텔이 더 나을 것 같았기에, 예약한 곳으로 찾아왔다. 트립닷컴에서 칭따오 스타피쉬 인터내셔널 호텔이라고 나온다. 공안과 파파고의 협업을 통해 체크인, 노숙보다는 낫지만 마냥 편히 쉴 환경은 아니다. 먼저, 중국 시간으로 새벽 비행기를 타려다 보니 모종의 불안감이 든다. 병약한 사무직 노동자의 캐낭여행(캐리어+배낭여행)이라 12시간 대기하고 새벽에 잘 잡아탈 수 있을지 영 확신이 들지 않는 것이다. 일정을 날려먹거나, 그냥 중국 신공항 탐방하고 돌아온 사람이 될까 싶어 깊이 잠들지 못했다.

편의점에서 칭따오 두 캔과 먹거리를 조금  샀다.  미리 준비한 트래블월렛의 외화충전을 사용하고 카드를 내밀었더니 알리페이만 된단다. 친애하는 국민 악덕기업 카카오페이가 알리페이와 제휴한 것을 기억해내지 않았다면 건강한 밤을 보낼 뻔 했다.  뭘 먹었으니 잠자리가 편치 않은 게 당연하다. 캡슐 내부도 나쁜 환경은 아니지만 평소 쓰던 침구류도 아닌데다 환기가 원활치만은 않아 다소 애매한 느낌이 있다. 자전거에 앉아 우는 것보다 벤츠에 앉아 우는 게 낫듯 공항노숙보다는 캡슐호텔이 낫다. 경유를 통한 저렴이 유럽여행을 노린다면 캡슐호텔 조합은 직항의 가격에 비해 괜찮은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어느덧 현지시각 4시 45분, 이륙 2시간 전이다. 아무리 공항 안이라지만 어떤 변수가 기다릴지 알 수 없으니, 푸동에서 체류기를 이어 쓰기로 한다. 여행시간을 모두 되돌려 회상하고 기록할 자신이 없어 블루투스 키보드만 챙겨왔다. 체력이 허락한다면 계속 요긴하게 쓸 수 있을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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