探: 여행

[EU레카]파리 6일차 3 (23.08.15)

매번 꺾이는 마음 2023. 8. 2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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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행 유로스타는 16시 13분이기에 원래 15시에는 일어섰을 것이나, 이미 입구까지는 가 보았으므로 마음이 넉넉했다. FIVE GUYS의 마지막 햄버거 조각을 먹었다. 한참 전부터 먹고 싶었는데 혹시 다 먹으면 자리를 비키라고 할까 싶어 꾹꾹 참고 남겨두었다. 유럽에서 마시멜로 이야기를 다섯 형씨 이야기로 바꾸어 겪은 셈이다. 보안 검색대 통과는 일사천리였다. 첫 기준을 중화인민공화국이 잡아 주어서 그런지, 유로스타의 보안 검색은 딱히 검색이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운이 없다면 인질극 패키지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유로스타는 열차 한 량의 길이도 길 뿐더러 전체적으로 넓은 느낌이다. 귀엽게 꿈틀대는 KTX나 ITX만 타 보아서인지 왕꿈틀이 에디션을 눈앞에 두고는 감탄할 수밖에. 그런데 감탄이 다 끝나도록 앞에 선 사람들이 열차에 탑승하지 않고 있었다. 신경질적인 기질을 타고난지라, 그냥 조금 더 감탄하면 될 것을 그새를 못참고 앞을 살폈다. 캐리어를 열차 객실 높이까지 들어올리는 것이 쉽지 않아 지체되고 있었던 것이다. 줄을 조금 앞질러 캐리어 올리는 것을 도왔다. 그렇게 한국민에 대한 느슨한 보안검색에 보답한 후 자리를 찾아갔다.

유로스타에는 캐리어를 별도로 모아두는 공간도 있고 머리 위에 올리는 짐받이도 있다. 인터넷 세상에는 많은 이들이 이 곳의 보안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불안해하며 나름의 대책을 강구한 흔적이 있다. 환경이 어떻든 무조건 자물쇠로 잠그거나, 1등으로 탑승하여 짐칸에 제일 먼저 넣으면 다른 사람들이 이후에 캐리어를 쌓아 자동으로 보안이 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러나 타고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그냥 머리 위에 자신들의 캐리어나 가방을 올려두었다. 내 것이라고 별 다를 바가 없을 것 같아 그냥 올리되, 잠금장치가 보이도록 올려두었다.

가져갈 생각이면 잠금장치 푸는 번거로움 정도는 감수하라는 광고였다. '안돼 안 열어줘 돌아가' 하고 있는 캐리어보다는 다른 가방이 먼저 타겟이 될 것이다. 또한, 두어 시간 남짓 달리는 정도는 그냥 틈틈이 신경쓰면 될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옆 자리의 나이 지긋한 영국 아주머니께서 한국 드라마를 보고 계셨다. 도대체 태극기가 몇 장째 펄-럭대는 상황인지 모르겠다. 그간 길에서 심심찮게 현대와 기아차를 보고 파리의 호스텔에서 한국 노래를 듣고 했지만 이건 철저히 개인적인 기호와 선택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

약간 놀라는 눈치를 하니 엘리자베스께서 먼저 말을 걸어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정확한 첫 계기를 들었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1년 반 가량 한국어 공부를 하셨다고 하며 가방 속에서 한국어 학습지를 꺼내 보여주신다. 한국에도 한 달씩 두어 번 들르셨다며 핸드폰을 보여 주는데, 내게 더없이 친근한 그림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이었다. 이렇게 된 김에 머리 위에 있는 내 짐이 안전하겠는지 여쭸다. 직행이고 경유하는 역이 없어 괜찮다고 한다. 순간 주변이 어두워진 채 시간이 꽤 흘러 바깥 풍경이 보이자 엘리자베스께서 미소지으며 'Welcome to UK'란다.

방금 해저터널을 통과했으므로 그 지점에서 런던 시내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궁금했다. 마음이 앞서 두서없는 영어로 물었더니 소통이 원활치 못했다. '얼마나 시내까지 시간이 런던 필요합니까?'정도로 들렸으리라. 대신 한국어로 '런던까지 얼마나 걸려요?' 하니 곧바로 1시간 내외라는 답이 돌아왔다. 영국에서의 내 이름은 잭슨 펄럭이 좋을 것 같다.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서 엘리자베스와 작별하고 런던 숙소를 찾았다. 걸어서 대략 10분 내외라 시내 구경도 할 겸 도보 이동, 이미 7시가 넘었다. 짐 풀고 숙소 주변의 전략적 요충지(?)들을 시찰하면 뚝딱 넘어갈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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