探: 여행

[EU레카]로마 3일차 2 (23.08.07)

매번 꺾이는 마음 2023. 8. 1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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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미리 섭외된 식당에서 다양한 요리를 맛보는 것이었다. 테오 형은 혼자 온 여행객들을 본인 바로 뒤에 따라오게 했다. 레스토랑의 방이 하나 열리며 첫 번째 줄부터 채우라고 하기에 당연스럽게 논산의 법도에 따라 가장 뒤쪽으로 들어갔는데, 앉고 보니 다른 두 명은 가장 앞 쪽의 첫 번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다소 의아하긴 했으나 빨리 앉고 싶었나보다 하며 대강 넘어갔다. 다들 혼자 온 것인데 나만 빼놓고 앉자고 밀담을 나누지는 않았을 게 아닌가. 가쓰라와 태프트에게 섭섭한 마음이 드는 사이에 한 커플이 테이블에 앉아도 되냐고 물어 셋이서 식사하게 되었다.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아라비아따 파스타, 마르게리따 피자, 오징어튀김과 새우튀김을 코스로 먹었다. 남부투어 이후 로마의 야경을 볼 생각이라기에 내가 본 광경을 몇 이야기하며 식사를 마쳤다. 그들은 이탈리아 일정만으로 7일 가량을 잡았는데 이탈리아는 확실히 그 이상을 투자하고도 남음이 있는 도시다. 식사 중 왠 알베르토가 들어오더니 갑자기 기타를 치며 노래를 시작한다. 흥겨운 한민족답게 신나게 호응하며 식사가 계속되었는데, 두어 곡이 끝나자마자 알베르토가 모자를 벗어들고 좌석 사이를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가이드님이 팁까지 이미 다 냈다고 하지 않았어?'라는 웅성거림과 함께 일동 묵념이 시작되었고 알베르토는 다소 실망한 표정으로 퇴장했다. 낭만에도 가격이 붙는 세상이니 당연한 듯도 하다. 어쨌거나 선남선녀와의 식사를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오니 바깥 테이블에도 양남양녀가 가득하다. 맛이 특출나지는 않았지만 많은 종류의 요리를 먹기에는 가성비가 훌륭한 곳이었다. 잠시 대기하고 있으니 버스가 도착하여 재탑승했다. 지중해 해안이 내려다보이는  쏘렌토 전망대로 향하는데 도로가 넓지 않아서 다소 쫄깃한 느낌이 들었다.

테오 형님은 버스기사님 이름이 빈센조라 하였는데 웃으라고 한 말인 줄 알았더니 진짜였다. 관광지에서는 물도 2~3유로에 비싸게 판매하고 있는데 빈센조에게 1유로만 내면 곧바로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다. 어쨌거나 우리의 콘실리에리 빈센조의 운전으로 다소 좁은 해안도로를 헤치고 나가자 넓게 트인 쏘렌토 전망대가 나왔다. 레몬 소르베를 맛보며 해안을 내려다보았는데 몇 시간이고 머물러도 좋을 만한 경치다. 시간은 모든 사람들이 사진을 남길 정도로만 주어졌는데 그것이 투어 상품의 장점이자 단점 아니겠나.

이쪽에 레몬이 유명한 이유에 대해서도 얼추 설명을 들었는데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해양 도시라서 해상을 누비는 사람들과 쓸만한 교역품이 필요했고, 선원들에게 발생하는 괴혈병을 예방하는 데 좋은 레몬을 키웠다는 게 대략적인 내용이다. 역시 세상은 나의 필요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필요에 따른 가치를 제공하며 변화하는 것들이 있다. 쏘렌토 전망대 다음은 포지타노 마을이었다. 버스가 곡선도로를 통과하기 위해 차선 두 개를 물고 돌아야 할 정도로 도로가 좁은 곳이 많았지만 우리의 빈센조는 거침이 없었다.

포지타노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아마도) 채널에서 죽기 전에 가 보아야 할 관광지로 꼽히며 급성장했다고 한다. 해안 절벽 위로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 지중해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접해 그림같은 풍경을 자랑했다. 넋놓고 해변을 걷던 중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어떤 엠마누엘이 내게 '뿌롸이베또!' 라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탈리아어를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뿌롸이베또'의 정체는 '프라이빗'이었다. 곧바로 뒤돌아 발걸음을 옮기자 엠마누엘의 표정이 이내 밝아졌다. 다시 바다를 감상하며 해안 초입의 카페로 되돌아왔다.

카운터에서 주문하려 하니 앉아있으면 메뉴판을 가져다준단다.
뿌롸이베또한 카페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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