探: 여행

[EU레카]런던 3일차 4 (23.08.17)

매번 꺾이는 마음 2023. 9. 5.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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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시 와사비&벤또였다. 초밥이나 롤 맛이 특별히 좋지는 않다. 초밥을 좋아하는 개인적 선호에 더해 다른 식당의 음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숙소와도 상당히 가까우니 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상대적' 저렴이지 환산해두고 보면 17000원~18000원 사이였다. 그러나 압정밭에서 구르다가 풀밭에서 구르면 상대적으로 선녀인 것과 같이, 값비싼 식당들만 보다 보니 와사비&벤또가 선녀인 것이다. 다만 이것만으로 지금의 배고픔을 달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괜찮은 나무꾼이 있을까 하고 테스코를 찾았다.

 

여러 메뉴 중 전자렌지에 몇 분 돌리기만 하면 되는 까르보나라가 있었다. 그리고는 계산대밖에 보이지 않았다. 일종의 터널비전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바로 결제되지 않았다. 분명 지금까지 했던 것과 똑같은 버튼을 눌렀는데 화면이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누군가 다가와 갑자기 뭐라고 하며 계산대 옆을 가리켰다. 한창 바쁜데 계산대를 왜 고장냈는지 따지는 투는 아니었기에, 가리킨 곳에 까르보나라를 올리니 그제야 결제가 진행된다. 물건을 반드시 지정된 곳에 올려두어야 결제가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공용주방에서 까르보나라부터 돌리고 선녀초밥을 먼저 세팅했다. 데워진 모습을 보니 꽤 훌륭한 나무꾼처럼 생겼는데, 대략적인 모습은 아래와 같다.

 

선녀초밥과 까르보나무꾼

 

EU레카 최초로 사진을 올린 이유는, 까르보나무꾼을 보는 여러분께서 상상하는 그 맛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배고픈 상태에서도 맛이 흡족하지 않으면 도대체 얼마나 건강한 즉석식품이란 말인가. 풍선근육의 나무꾼 덕분에 상대적 선녀는 곧바로 승천할 수 있었다 . 

 

그런 와중에 쌓여가는 세탁물이 슬슬 내 여유를 조이고 있었다. 손빨래하기에 양이 많고 귀찮은 것도 문제지만 건조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였다. 방에는 9명이 3층 침대에 각각 누워 있는데 침대의 난간이나 사다리에 널 수도 없었다. 내 침대 옆에만 널자니 침대의 커튼을 모조리 빨래로 대체해도 빨래가 남을 지경이었다. 위층 사는 분들께 사다리에 빨래를 널어도 되느냐고 물을지 잠시 고민했지만, 세탁했다고 하더라도 잠자리에 들기 전 모르는 외간남자의 축축한 팬티를 밟고 싶은 선원은 없을 것이었다.     

 

간이 빨래줄을 설치하기에도 공간이 넓지 않았다. 삶이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 만큼, 어떻게든 빨래줄을 설치한다고 해서 그 빨래줄을 반드시 내가 쓸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어쩌다 오밤중에 측간에 가려는 선원이 대충 걸어둔 빨래줄로 곤경이라도 겪는다면 그 친구가 내 머리에 엘보우를 갈길 것이 분명했다. 문득 얼핏 숙소 내에서 세탁 관련 안내문을 본 것 같아 건물을 훑기 시작했다. 세탁실은 두 개의 층을 내려가서도 모퉁이를 두 번 돌아야 할 만큼 가는 길이 꽤 복잡했다. 그러니까, 호스텔이 스마트한 게 아니라 스마트한 사람만 묵을 수 있는 호스텔인 것이다.

 

세제까지 총 8.5파운드가 필요하다

 

토큰 온니라 리셉션을 지키는 언니에게 다른 방법이 있는지 물으니 없단다. 나도 영국에서 현금을 사용한 적이 아예 없어 침대로 돌아왔다. 풍선근육이 힘은 못 써도 넓은 자리를 차지하는 건 마찬가지라, 양만 든든한 까르보나무꾼 덕에 졸음이 밀려왔다. 한 번이 어렵지 두세번은 쉽기에 파리지앵의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코인빨래방을 찾았다. 찾고보니 파리에서보다 더 가까이 있었다. 숙소의 평화를위해  ATM이 보이면 10파운드는 뽑아 두리라 다짐하며 누웠다. 엄밀한 계획은 아니지만 세인트 폴 대성당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정해진 것만으로 잠자리가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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