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레카]런던 1일차 2 (23.08.15)
예상대로 학생들은 상당히 시끄럽다. 자연스러운 학습의 장은 무슨 자연스러운 역습의 장이다. 생각해보니 학생들을 데려오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숙박비 싸지 한 방에 9명씩 들어가지 다 같이 모일 자유로운 무료 공용공간도 있으니 안 올 이유가 없다. 호텔은 숙박 비싸지 한 방에 많이 넣어야 4명이지 어디 모이려면 테이블도 없는 로비 쇼파에 앉아야 하니까 호스텔이 단체로 오기에는 압도적이다. 그러려니 하며 샌드위치를 먹는데 웬 곱슬머리 프랑스 잼민이가 공용공간의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말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혹시 호그와트 출신이면 곤란할 수 있으니 그냥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요란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한다. 손대면 사이렌이 울린다고 버젓이 써 있는데도 그러는 거 보면 외국도 당기시오 미시오 못 읽는 것은 비슷한 것 같다. 사실 당기거나 밀거나 둘 중 하나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텐데 우리 호그와트 친구는 운 없게 고정문을 건드린 것이다. 직원이 올 때까지 몹시 시끄러웠다. 울려댔어 사이렌, 꽉 찬 휴게실에, 도망치다 흘린 빵가루와 물이 흥건했다.(호미들-사이렌 참조) 강한 주의와 함께 수습까지 한 1분 걸렸다. 역으로 지X해야 사람들이 지 일인줄 안다더니 고정문에게 제대로 역지사지 당한 녀석은 금세 시무룩해졌다.
런던은 아무 계획 없이 3일짜리 런던패스만 사 두었었다. 런던 와서의 체력을 예상하기도 어려웠기에 어떤 투어도 예약하지 않았다. 이미 이탈리아 곳곳을 돌아다니며 로마 군단병 체험을 하고, 프랑스의 공용자전거로 도심을 달리며 경기병 체험까지 했는데 런던에서까지 무슨 장궁병 연병장 집합하듯 시간에 매이기는 싫었던 것이다. 런던패스 외에 사전에 결정된 것은 두 가지 뿐이다. 첫째로, 2017년 10월에 자전거 국토종주 중 만났던 웨일스 친구 마이크를 보기로 했다. 둘째로, 급하게 여행이 결정된 후 여행 준비기간에 한국에서 소개로 만난 스위스 친구 모나의 동네에 놀러가기로 했다.
2017년에 학생이었던 마이크도 지금은 일을 하고 있는데,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가 근무시간이란다. 주말에 만나거나 일 가기 전 점심에 보자기에 점심을 골랐다. 한국에서 만났을 때는 자전거 국토종주중이어서 내가 앞장서 안내했다. 언젠가 내가 런던에 오면 본인이 소개하겠다 하였을 때, 과연 내가 런던에 가볼 일이 있나 싶어 갸웃거렸는데 인생 참 모를 일이다. 2017년에는 마이크와 함께 묵은 숙소의 저녁메뉴가 제육볶음이었는데, 밥이 나오고 나서 본인이 비건이라고 하여 메인 요리를 함께 묵을 수 없었다.
당시 비건 같은 중요한 정보는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하던 중에 마이크는 '한국은 어디를 가나 고기라 이런 상황에 익숙하다'라며 주변의 나물반찬을 모조리 해치웠다. 그는 제육 2인분을 먹여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으로 모자라 멋진 식사를 했으니 본인이 아이스크림을 사겠다고 했었다. 그처럼 웅장한 근본의 웨일스인에게 두유노클럽을 출동시키기는 조금 머쓱하여 아이노 가레스 베일 정도의 커뮤니케이션을 했었다. 국토종주 이후에도 두어 번 만나긴 했다지만, 6년 여가 지나 런던에서 다시 만날 약속을 정하고 있자니 느낌이 새로웠다.
마이크는 아침에 미용실을 간다며 일찍 오기는 어렵다며 11시 무렵에 내가 묵는 호스텔 근처로 오겠다고 했다. 약속을 정하고 보니 영국 박물관이 호스텔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어, 나 또한 아침에 일찍 일어나진다면 박물관을 둘러보며 기다리면 될 것 같았다. 영국의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들은 대부분 무료입장이며 그 안에서 열리는 특별전의 티켓을 따로 구매하는 형태가 많다. 그렇기에 애매하면 그냥 걸어서 박물관에 가는 것이 괜찮은 대안이다. 선실로 올라가니 이미 불은 꺼져 있었는데,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선선한 밤공기가 나쁘지 않아 그대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