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레카]파리 3일차 3 (23.08.12)
염석진 대장에게 구멍이 두 개.. 아니 구도가 두 번 엇나간 사진을 받아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의 베르사유 투어도 준비할 겸 쌓인 빨래도 처리할 겸 저녁의 집시도 피할 겸 조기퇴각. 프랑프리에서 샌드위치에 우유 하나 사들고 들어왔다. 옆 침대를 쓰던 레이첼이 무스타파로 바뀌어 있었다. 약간의 아쉬웠지만 8인 1실은 사람이 휙휙 바뀐다. 샌드위치와 우유로 허기와 아쉬움을 달랬다. 주섬주섬 빨래를 챙겼는데 쌓인 게 꽤 많다. 이미 각오하고 가벼운 여름옷으로만 적은 짐을 챙긴 것이지만 손빨래를 하기에는 적은 양이 아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육체노동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해진다.
문득 돌아오는 길에 코인빨래방을 얼핏 본 것이 기억나 구글 지도에서 가까운 코인빨래방을 찾았다. 대략 400m 거리에 코인빨래방이 있기에 신명나게 빨래를 챙겨 나갔다. 프랑프리의 0.3유로짜리 봉지에 빨래를 담아 다니니 현지인이 된 기분이다. 코인빨래방에 들어서자마자 온갖 불어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도 코인빨래방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기에 시스템 자체를 모르는 상황. 파파고 이미지 검색과 곁눈질을 이용한 무형식학습을 통해 기계 번호를 누르고 결제한 후 사용하는 것임을 파악했다.
우선 세제를 뽑으려고 번호를 누르고 결제하려는데 카드를 태그하는 곳이 있었다. 중국에서도 QR코드로 구걸하는 추세라더니 코인빨래방도 카드빨래방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자코뱅의 가게처럼 6유로부터 빨래할 수 있는 것인가 살펴봤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카드를 태그하자 반대편에서 세제가 떨어졌다. 왠걸, 섬유유연제였다. 여기서의 나는 그렇게 유연한 섬유까지는 필요 없는데 싶어 다시 고개를 돌리다 나와 비슷하게 헤매고 있는 어떤 한국인 여성분이 계셨다. 그런데 또 왠girl, 어제 게스트 키친에서 보았던 오뚜기밥이었다.
오뚜기밥은 조금 큰 동전 크기의 하얀 세제가 든 작은 비닐 포장지를 들고 통화하며 서 있었는데 마침 포장지 안에 세제가 두 개 들어 있었다. 여행 근황에 대해 남자친구와 통화하며 세탁기에 세제 투입구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뚜기밥과 3분카레의 대화에 잠시 끼어들어 물었다. '제가 뽑은 게 섬유유연제 같은데... 절반씩 나누어 쓰실래요?'라고 제안하여 세제를 해결했다. 세탁기 돌아가는 동안 오뚜기밥과 떠들며 심심치 않게 기다릴 수 있었다. 어디 가기에는 세탁 시간이 짧기도 했고 끝나자마자 건조기로 옮기려면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은 상황이었다.
오뚜기밥은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으며 유럽에서 열리는 음악 프로그램에 참가한 후 뒤이어 여행을 계속하는 중이라 했고, 나도 한 달 쉬는 동안 유럽 여행 중임을 간략히 소개했다. MBTI가 ENFP라고 하는데 T와 F만 바뀌는 나와 거의 비슷했다. 다만 내가 내일 베르사유 투어가 있어 투어 참여자들과 우버로 이동할 계획이라 하니 혹시 합승이 가능하냐고 묻는다. 아무래도 P는 나보다 대문자임이 확실하다. 마침 우버 탑승객이 총 5인인데 4인을 초과하는 경우 6인짜리 밴을 불러야 하는 상황이었고, 합승을 기획한 주모자(?)에게 물었으나 답은 오지 않았다.
샌드위치와 우유를 너무 일찍 먹었는지 다시 배가 살살 고팠다. 누군가가 살은 많이 먹어서 찌는게 아니라 쉬지 않고 먹어서 찌는 거라던데 얼추 맞는 이야기 같다. 그치만 나는 쉬지 않고 많이 먹는 편인걸 어쩌랴. 뭐를 좀 보탤까 고민하던 참에 오뚜기밥이 저녁 같이 먹겠느냐고 제안하기에 그러자고 했다. 코인 빨.. 아니 카드 빨래방을 나와 초밥세트 사고 마트 들러 작은 컵라면을 더했다. 뭔가 메뉴가 아쉬워 나는 맥주 두어 캔을 더해 게스트 키친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만 식사가 끝날 때까지 우버 합승 여부에 대한 답이 오지 않아, 연락 오면 알려주겠다고 하고 일찍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