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레카]파리 2일차 1 (23.08.11)
투어 시간이 11시인 게 얼마만이었던가. 여유롭게 일어나 씻고 프랑스 현대미술의 총본산 퐁피두 센터로 향했다. 물론 실제 총본산인지는 잘 모르지만 뭔가 호국불교의 총본산 같은 구절이 떠올라 가져다 붙여 보았다. 도착한 날 나비고 교통카드에 10회 탑승을 충전하였기에 그냥 적당한 버스 노선을 찾아 탑승하면 되었다. 지도를 좀 띄엄띄엄 보는 순간 버스가 순식간에 한 정거장을 지나쳤다. 대충 하차하여 잰걸음으로 집결지에 도착하니 10분 전이었다. 인사 나누고 수신기 받고 하며 세팅하는데 총 인원이 3명이라 여유로운 관람이 예상되었다.
별 기록을 해 두지 않고 있다가 8월 18일쯤에 이르러 기억을 되돌려 쓰려니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여행 일정 자체가 압축적이고 모든 기간에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 많으니 별 수 없기도 하다. 아무튼 퐁피두 센터의 추상미술 현대미술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단순 미술관이 아닌 프랑스 시민의 복합문화공간에 가깝다고 한다. 퐁피두 대통령이 설립하였으며 거대한 철제 기둥과 파이프가 바깥쪽에 세워져 내부 공간을 지탱하는 구조라고 한다. 퐁피두 센터의 내부에서 쓰이는 전기, 물, 공기(였나 가스였나) 등의 배관은 서로 다른 색으로 구분하여 색칠된 것이 특징이다.
가이드님을 따라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전시실로 올라갔는데, 작은 건물이 아니어서인지 파리 시내가 꽤 넓게 내려다보인다. 파리의 건축에 고도 제한이 있어 가능했다. 전시실에서는 몬드리안과 호안 미로 등 한 번은 들어보았을 작가들의 여러 작품을 보았다. 배경 지식을 조금 더 갖고 가면 더 디테일한 감상이 가능했을 듯 싶다. 가이드님이 혹시 내게 쇠 귀에 경 읽는 기분을 느끼셨을까 싶기도 한데, 그래도 열심히 경청했으므로 삼 년 묵은 서당개에게 강독하는 정도의 느낌이시지 않았을까 한다. 덕분에 서당개에게도 약간의 이해는 생겼다.
보통 일반의 사람들이 보기에 이게 무슨 미술이고 예술인가 싶은 작품들을 종종 만난다. 그런 면에서 현대미술은 의미 부여와 그러한 의미의 표상을 입체적으로 도모하는 성격이 있는 것 같다. 사진이 발명되어 실제와 같은 그림이 의미를 잃자 캔버스 속에서 실제를 해체해가며 예술적 의미를 새롭게 부여한다거나, 그 같은 실제의 해체와 추상적 표현기법이 한계에 다다르자 미술관 밖에 있는 생활용품들까지 미술관 안으로 데려와 의미를 더하는 형식이다. 미술이 흐르는 모든 과정과 변화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흐름을 바꾸는 것이 전례 없는 방법에서 비롯되는 새로운 시작점들임은 알 수 있었다.
투어가 끝나니 이미 거의 두 시였다. 캡틴 코리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맛집이라 검색된 오리스테이크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검색을 네이버에서 한 게 화근이었는지 한 테이블 건너 한국인인 수준이었다. 어쨌거나 식사를 같이 하면 공용 메뉴를 주문하여 나누어 먹을 수 있다는 특장점이 있다. 오리스테이크가 한국인의 대표 메뉴인 듯 싶어 오리스테이크를 하나씩 주문하고 양 스테이크를 공용으로 나누었다. 음료는 최근 거의 식혜와 비슷한 수준의 전통적 권위를 획득하고 있는 제로콜라로 통일했다.
몽마르트르 언덕에 올라갔다가 내려와 콩코드광장을 거쳐 식당에 왔다는데 몽마르트르에는 여전히 집시들이 꽤 있는 모양이었다. 때때로 팔찌를 던진다기에 혹시 그들도 '굿 코리안'이라고 하는지 다소 궁금했다. 오리스테이크는 그 나름 별미였고 양 스테이크도 먹을 만 했다. 식사를 마치고 어디를 갈까 싶었으나 몸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내일 오전 오르셰, 오후 루브르 투어를 앞둔지라 쉬기로 했다. 프랑스에서는 프랑프리(franprix)라는 슈퍼마켓이 대중적이라던데 마침 가까운 곳에 있었다. 게스트 키친이 아무리 후져도 물은 끓일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컵라면 하나 과자 하나 우유 하나 골라 호스텔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