探: 여행

[EU레카]로마 4일차 2 (23.08.08)

매번 꺾이는 마음 2023. 8. 15.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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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대성당 관람을 계속할지 고민하던 찰나 앞에서 함께 야식 조졌던  태프트가 보였다. 인사하고 사진 찍어주다가 금방 10분이 흘렀다. 이미 관람한 것을 또 볼 여유까지는 없을 것 같아, 성당의 쿠폴라에 올라가는 것이 더욱 좋겠다 싶어 바삐 걸음을 옮겼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피렌체행 기차 시간을 맞추려면 조금 아슬아슬하다 싶었다. 저 중간쯤만 되어도 좋겠다 깊어 줄 앞쪽을 응시하던 중, 어깨로 자웅을 겨루었던 예의바른 왕 서방을 발견했다. 어깨의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서두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대국적 심계를 미처 알아채지 못했달까.

장장 50여 분 기다린 끝에 간신히 매표소, 그냥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은 8유로, 중간까지 엘리베이터로 오르는 것은 10유로였다. 고민없이 10유로를 골라 쿠폴라까지 오르는 데 또 10여 분,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오를 만한 좁디좁은 나선형 계단을 계속 올라가야 했다. 통로가 조금 어둡고 환기가 잘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앞이 환해졌다. 창문인 줄 알고 고개를 들었는데 작은 구멍으로 들어온 빛이 앞 사람의 머리에 반사되어 빛난 것이었다. 탈모 갤러리에 가입해 계시다면 애틀랜타 지부장을 역임하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가족 단위로 관광을 온 것 같았는데, 그 덕에 오르는 속도는 조금 느렸다.

한숨 돌릴 겸 나도 천천히 발을 뗐다. 도착일 이후 첫날의 3만 보, 둘째 날의 남부투어, 셋째 날의 바티칸 투어까지 마친 이후라 이미 내 발이 아니었기에 나쁘지 않았다. 기차 시간이 유일한 걸림돌이었는데, 그렇다고 다시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음을 여유롭게 갖던 찰나 뒤에서 후욱대는 숨소리와 함께 거구의 패트릭이 나를 응시하며 올라오고 있었다. 말 그대로 '오 마이 갓'이었다. 패트릭이 먹은 통새우와퍼의 향기와 밀폐된 공간의 녹슨 손잡이 냄새와 땀냄새가 합쳐져 썩 유쾌하지 않았다. 급한대로 방귀라도 뀌어 잠시 패트릭의 진격을 저지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최대한 빠르게 올라가기로 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애틀랜타 지부장님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바티칸에서의 오마이갓은 먹히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로 중간까지 가고도 대략 360여개의 계단을 오르니 성 베드로 대성당 앞의 탁 트인 광장과 로마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장관이고 절경이었다. 박식하거나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인류 역사에서 이 공간을 빼놓고 이야기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정도는 안다. 절경을 내려다보며 서양에서 종교가 어떤 인식으로 그들의 의식 또는 무의식에 작용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시원한 풍경에 감탄하며 돔 한 바퀴를 천천히 돌자 패트릭이 도착했다. 갓 블레스 패트릭.

쿠폴라를 소개한 가이드의 말로는 내려갈 때 타는 엘리베이터가 없다고 하였는데, 내려갈 때에도 중간 지점에서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왕 서방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분명 어디서 여유롭게 젤라또를 핥아먹고 있으리라. 내려오고 나서야 갈증이 느껴져 노점을 찾았는데 1유로짜리 물을 얼렸다고 2유로에 팔고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참았을 것 같은데 낯선 만리타향에서는 기력 관리도 중요하다고 여겨 우선 샀다. 2유로를 건네자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며 '씨에..쎼?... 캄사..함니다..?'라기에 '감사합니다!'로 받았다. 상쾌한 표정의 '캄사!함니다!'를 돌려받고 역으로 향했다.

테르미니역으로 돌아와 숙소에서 짐 찾아 다시 역으로 오니 15시 무렵이다. 아직 시간이 조금 있어 전광판을 아래부터 훑어가며 내가 예약한 15:55분 기차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15:55분이 없어 티켓을 연신 확인하며 전광판의 위까지 훑던 중 맨 위에 'Arrival'이라고 쓰여진 것을 확인했다. 급한 마음은 멀쩡한 사람도 0개국어 구사자로 만든다. 옆 전광판으로 가니 15:55분에 출발하는 기차가 있었다. 피렌체를 거쳐 밀라노 종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럽에서의 기차 연착이나 취소가 잦다고 들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남은 시간동안 점심을 때우면 좋을 것 같아 연어피자 두 조각을 시켜 빈 의자에 앉아 먹었다. 다소 늦은 점심이지만 배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한 조각을 다 먹어가던 중 역 안쪽에서 웬 무솔리니가 고래고래 소리치며 테르미니 역을 지하철 1호선으로 만들고 있었다. 남은 연어피자를 징발당하는 불상사가 없도록 두 번째 피자는 다소 급하게 먹어야 했다. 우물대며 귀따가운 무솔리니의 목청을 피해 고개를 돌렸더니 왠 모델같은 금발 여성분과 눈이 마주쳤다. 'That's really bad opera'라며 조선인의 해학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연어피자를 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다소 아쉬운 마무리를 뒤로하고 피렌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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