探: 여행

[EU레카]로마 2일차 2 (23.08.06)

매번 꺾이는 마음 2023. 8. 10.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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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매월 첫째주 일요일은 많은 유적, 미술관, 박물관의 무료입장이 있다. '문화가 있는 날'과 비슷하달까? 집결장소에 조금 늦는 두 사람을 기다리며 콜로세움 근처를 보니 기나긴 줄이 햇살을 아랑곳 않고 늘어서 있었다. 콜로세움 내부 구경이 물 건너갔음을 아침부터 직감할 수 있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콜로세움과 콜로세움 바로 옆에 위치한 개선문이 시작이었다. 네로 황제부터 시작한 설명은 베스파시아누스의 로마 재건을 거쳐 귀족들이 콜로세움의 대리석을 떼어가 개인적인 건축에 사용했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모든 여정이 이러한 순서의 반복이었다. 이후 개선문 한번 둘러보고 제국로를 걸었다.

매월 첫째주 일요일인 덕에 유적 입장은 만만찮지만 제국로에서는 차도를 활보할 수 있다. 한 달에 하루 '차 없는 거리'가 되는 것이다. 제국로 양쪽에는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동상이 있어 관련 설명을 들으며 캄피톨리오 언덕을 거쳐 로마의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로 이동한다. 도시 전체가 유적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베네치아 광장에서 휴식 후 판테온신전과 트레비분수를 거쳐 스페인광장에서 오전 일정이 종료되었는데, 가이드의 뒷모습을 자세히 보니 그가 매고 있는 가방조차 두 개의 지퍼가 자물쇠로 잠겨 있다. 걸어다니는 증빙서류를 보는 느낌이다.

로마의 도로나 수도교, 판테온 신전과 트레비 분수, 스페인 계단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을 듣는데 그러한 내용보다는 로마에서 비둘기가 '성령'으로 여겨진다는 등의 잡다한 다른 이야기들이 더욱 재미있었다. 이탈리아 어린이들도 분명 수업 집어치우고 첫사랑 이야기나 해 달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 대망의 트레비 분수는 사람이 빼곡히 들어차있었다. 소매치기가 소매를 쳐도 도저히 다시 빠져나가기 어려운 지경이랄까. 모두가 알듯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한 번 던지면 다시 로마에 올 수 있고 두 번 던지면 사랑을 이룰 수 있으며 세 번 던지면 사랑이 깨진다고 한다.

평상시의 나라면 '그 돈으로 젤라또를 더 먹고 말짘ㅋㅋㅋ'하고 지나쳤겠으나 이 지경까지 이르고 나니 무언가 찜찜함이 드는 게 아닌가. 게다가 동₩전 세 개는 애초 해당사항이 없으니 묘하게 해볼 만한 장사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동전을 던져? 말아?' 가 아니라 '50센트를 두 개 던지면 효험이 없나...?' 따위의 고민인 것이다. 사실 10센트 두 개도 고민하긴 했으나 혹시 유로가 있을 유에 길 로자를 쓸까 싶어 1유로 정도는 맞춘 것이다. 그렇게 나를 있는 길로 인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50센트 두 개를 던지려는데 분수 가까이 가는 데 한계가 있었다. 결국 온전히 팔힘에 의지하여 50센트 두 개를 뒤로 날렸다.

팔 힘이 조금 부족했다면 어떤 알베르토나 빈센조가 횡재했겠거니 치고 근처 젤라또집에서 한입 하니 스페인 계단으로 이동할 시간이었다. 햇빛이 강해 설명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이미 몇 시간 지나다보니 다들 어느 정도 지쳐 있었다. 13시 무렵 투어가 끝나고, 돌아갈 때는 지하철을 타 봐야지 싶어 근처 역으로 가니, 함께 투어 참여했던 노부부께서 더 저렴한 표를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아는데 표값이 너무 많이 나온다며 역을 헤매고 계셨다. 1시간 30분간 무제한 환승되는 티켓이 1.5유로인 것으로 알고 있어 내 것을 사며 동일한 표를 발권해드렸다.

뜻밖에 목적지도 같고 숙소의 거리도 서로 멀지 않아 함께 점심을 드실 생각이 있으신지 제안드렸다. 투어 직후라 근거리 식당을 찾아갔는데, 어르신들끼리는 못 왔을 곳을 왔다고 좋아하시며 내 몫까지 사겠다고 하셨다. 나갈 때쯤 이야기하셨다면 부담 없이 티본 스테이크를 주문했을 텐데 들어오자마자 들은 이상 그러기는 어려웠다. 봉골레파스타를 고르니 뜻밖에 맥주까지 더해 주셔서 푸짐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독일과 스위스는 자녀분들과 여행하며 거쳐 오셨는데, 이탈리아만 두 분이서 오게 되셔서 자녀분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다신다. 그렇게 숙소 근처까지 동행해드리니 거의 3시였다.

아, 나 야경투어 있지 참... 정신이 퍼뜩 들어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조금 쉴까 했는데, 청도에서 하룻밤 미리 잔 탓에 간단히라도 빨래를 해 두면 좋을 것 같았다. 데스크에서 한 차례 정리하고 갔는지 샤워부스가 조금 정돈되어 있었고, 부스 바닥의 샴푸가 세면대로 올라가 있었다. 나름 배려한답시고 앞 침대의 세이렌들에게 혹시 세면대를 쓸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말을 걸어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는지, 화들짝 놀라더니 자신들은 세면대를 쓸 계획이 없고 정리해두지 않아 미안하다며 주섬주섬 세면대 위의 샴푸를 챙긴다. 아니 그거 내가 호스텔 샴푸인 줄 알고 아침에 썼는데..?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과 달리  발 저린 사람 따로에 도둑은 나였고,
빨래를 마친 도둑은 잠시 누워 쉬다가 야경투어를 위해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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